흔해빠진독서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상, 중, 하』, 까치, 1993.

시월의숲 2012. 10. 17. 23:12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지나친 연민이나 자기비하 혹은 타인에 대한 쓸데없는 동정심 따위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쓸데없이 사랑을 구걸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죽일듯이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을 그린다. 하지만 삶이 자신을 휘두르도록 잠자코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그는 결단을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며 그러기 위해서 때론 사람들이 악하다고 말하는 것들을 서슴치 않고 행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서 어떠한 가치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본다. 죽음에 대해서 너무나 무덤덤하게, 아니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때론 섬뜩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보이지 않고 드러내 보이더라도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도 중요한 것은 있다.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반쪽이나 다름없는 쌍둥이 형제와 어머니이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 마을. 그의 거짓말은 전부 '하나의 자아를 가진 두 개의 몸'인 쌍둥이 형제와 자신이 어렸을 적 자랐던 마을에서부터 비롯되고 끝이난다.

 

세 권으로 나눠져 있는 소설이다. 첫 번째 <비밀 노트>는 주인공인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어릴 적 이야기를 분절된 기억처럼 짧은 호흡으로 메모해 놓은 것이다. 두 번째 <타인의 증거>는 자신의 쌍둥이 형제였던 클라우스가 국경을 넘어 간 후 마을에 남겨진 루카스에 대한 이야기다. 두 번째 권의 마지막에 보여주는 반전은 세 번째 권에서의 혼란을 야기하는 예고이다. 세 번째 <50년간의 고독>은 앞의 두 권에서 보여준 비교적 일관된 줄거리를 뒤집어 엎고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혼란스러움으로 우리를 밀어넣는다. 이 모든 것이 거짓은 아니었나? 클라우스와 루카스는 한 사람인가? 국경을 넘어간 것은 누구인가? 그들이 형제가 맞기는 한가? <비밀 노트>와 <타인의 증거>에서 보여준 인물들은 모두 다른 인물이었던 것인가? 하지만 이 모든 혼란스러움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소설이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소설 속 클라우스도 자신이 쓰는 글은 진실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거짓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 담긴 거짓된 이야기들 사이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 생각건데 그건 인간이란 존재의 폭력성과 그 이면에 담긴 인간 본연의 고독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어떤 면에서 타인에게 폭력적인 존재이고 그것은 인간이 고독하다는 증거이며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누군가를 찾아 헤메는 것이라고. 클라우스는 루카스를 보내고 50년간이나 그를 기다리며 고독한 삶을 살았다.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그들은 재회를 하지만 50년이란 세월은 그들을 서로 부정하게 만들고, 스스로 영원한 고독, 즉 죽음(그것은 영원한 만남을 의미하는 것일까?)을 선택하게 한다.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다. 특히 첫 번째 권인 <비밀 노트>에 나오는 여러 삽화들은 작가가 자신의 오빠와 어렸을 때 했던 것들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전쟁의 비인간성과 피폐함, 환멸 속에서 그래도 살아가야 했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소설 속 주인공들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일지 모르겠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사람이 죽고, 죽여야 했는지, 그것을 직접 목도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마지막 권에 실려있는 역자의 말에 따르면 세 권을 각각 하나의 독립된 소설로 읽어도 무방하다고 한다. 작가 자신도 첫 번째 권을 쓸때 두 번째 권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은 어느 한 권만 읽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세 권을 모두 읽었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세 권이 모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구성이나 시점이 저마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비로소 특유의 매력을 가진다. 소설이라는 거짓말이 소설 속의 또다른 거짓말로 인해 진실이 과연 무엇인가 혼란스워진다는 점 말이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도 번역을 하면서 새로 지었다고 하는데, 꽤 그럴듯하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라는 헝가리 태생의 생소한 작가의 작품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나서는 그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터무니없이 악의적이지만 결코 과장하지 않고, 웃기지만 결코 웃을 수 없으며, 아무렇지 않게, 무덤덤한 얼굴로,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건조하게 절망을, 슬픔을, 상실을, 증오를, 살인을 이야기하는, 섬뜩하고 잔혹한 작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