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김연수, 『원더보이』, 문학동네, 2012.

시월의숲 2012. 8. 1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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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그토록 별이 많다면, 우리의 밤은 왜 이다지도 어두울까요?

 

그건 우리가 지구라는 외로운 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에 어림잡아 3천억 개의 별들이 있다고 추정합니다. 이중에서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알려진 별은 현재로서는 지구뿐입니다. 그래서 지구는 고독합니다. 이 고독은 3천억분의 1의 고독입니다. 그 별들 중에서 생명체가 존재하는 별이 하나라도 더 있다면, 이 고독은 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그때 지구의 밤은 지금보다 두 배는 밝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 하나뿐입니다. 아무리 별이 많다고 해도 지구가 3천억분의 1만큼 고독한 한에는 지구의 밤은 여전히 어두울 것입니다(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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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은?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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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위안을 주는 소설이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한 소년의 성장기이자 80년대를 배경으로한 이 소설은 위의 문장처럼 아름다운 위안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김연수의 다른 소설들보다 이야기의 밀도가 조금 떨어지고 산만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뭐 그래도 캄캄한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그의 소설에는 있다. 아, 그리고 이 소설은 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직 그 빛이 지구에 도달하기도 전의 여리고 작은 별, 아직 주위의 어둠이 더 강력하여 내면의 빛은 미미하기 그지없는, 그런 별에 대한 이야기. 그러므로 이 소설의 배경인 80년대의 어둠에 대해서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주인공에게는 아직 감당하기 힘든 어둠이기 때문이며, 아버지를 잃은 개인적인 불행이 전부인, 어머니를 찾고 싶은 마음이 전부인 그런 어리고 여린 소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절은 소년의 개인적인 불행조차 사회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이해하기 힘든 시대이긴 했지만. 그래도 소년은 꿋꿋이 아버지를 기억하고, 어머니를 찾으려고 한다. 마치 자신이 원더보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쩌면 그 시절의 소년들은 모두 원더보이였을지 모르겠다. 어둠 속에서, 3천억분의 1만큼의 고독한 지구의 어둠 속에서 그래도 꿋꿋이 성장해야만 했기 때문에. 하지만 소설 초반의 '남의 속마음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의 설정을 후반까지 끌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그 시절의 소년들은 모두 원더보이라는 식의 평범함의 승리도 좋지만 초반의 설정이 무척 재미있었기에 그의 능력이 갑자기 스스륵 사라져버렸을 때는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능력이 사라져버린데 대한 설득력 있는 사건이 좀 더 나왔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설은 주인공의 상실감과 외로움을 잘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 슬픔 등이 소설을 읽는내내 고스란히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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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지구의 밤은 어둡고, 고독한데 나는 그 속에서 당당히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소설은 그러한 물음을 던지기 위해 쓰여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