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4시의희망

nell / Cliff Parade

시월의숲 2012. 11. 28. 23:03

 

 

그저께 주문한 음반을 오늘 받았고, 몇 주 전 병원에 가서 받은 건강검진의 결과통보서도 오늘 받았다. 며칠 새 공기는 더 차가워졌고, 몸은 더 움츠러들었다. 아침과 저녁, 출퇴근길에 걷는 이십여분의 시간조차 추위로 인해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다. 몸 속에서 꿈틀대는 익숙한 나약함. 건강검진 결과통보서에는 혈압이 약간 높고 이상지질혈증에 가벼운 혈당이상이라는 의사의 소견이 적혀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의 언어를 접했을 때 느껴질 것 같은 이물감이, 통보서를 읽는내내 느껴졌다. 결론은 운동부족이라는 것. 맞는 말이다. 내가 하는 운동이란 고작 숨쉬는 것 밖에 없으니. 정확히 말해서 운동'부족'이 아니라 운동'전무(全無)'라 해야 할 것이다. 하루키나 김연수처럼 마라톤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벼운 조깅을 시작해 볼까? 결국은 늘 그랬듯 '의지'의 문제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들이 많건 적건 결국 '의지'의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넬의 5집을 듣고 있다. 한동안 넬의 음악은 듣지 않다가 'Cliff Parade'라는 노래를 듣고부터 '아, 넬...' 하고 자꾸 되내이게 되었고, 음반까지 사게 되었다. 이번 앨범은 전작들보다 음악적인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다거나 외국의 무슨 밴드와 비슷하다는 등 호평보다는 혹평이 많은 것 같은데, 글쎄, 나는 전문적인 음악평론가가 아니니 음악적으로 어떤가를 말할 깜냥은 못되고, 순수히 넬의 음악에 호감이 있는 평범한 청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냥 들을만한 것 같다(괜찮다는 이야기를 뭐 이리 길게 쓴거지?). 4집에 비해서 전체적인 사운드가 약간 심심하고 무심한듯 느껴지기도 하는데('그리고 남겨진 것들'이라는 타이틀곡조차), 그것도 이 'Cliff Parade'라는 노래 한 곡으로 인해 상쇄되고도 남는 것 같다. 그만큼 이 곡의 매력은 단연 출중하다. 앨범의 모든 곡들이 이 노래로 향하기 위해, 이 곡의 완성을 위해, 이 곡에 담긴 카타르시스의 극대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될 만큼. 모든 노래가 이 노래를 위한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될 만큼(물론 넬이 들으면 버럭 화를 내겠지만). 선동적인 드럼과 감성적인 보컬, 중독성있는 멜로디가 어우러져 묘한 청량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곡이다. 처음 들었을 때 한동안 내가 꼼짝할 수 없었던 건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가사가 때론 암울함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그 암울함을 넘어서고 싶은 욕구 또한 느껴지기도 한다. 절망보다는 절망을 넘어선 것(쉽사리 희망이라 말하지 못할 것)에 좀 더 가까이 있는 듯 생각되기도 하는 것이다. 슬픔과 절망의 카타르시스랄까?(정작 무엇에 의한, 무엇을 위한 슬픔이자 절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 안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감정의 덩어리가 만져진다. 그것은 일제히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만약 모든 것이 의지의 문제라면, 그래서 노래가 어떤 의지를 북돋울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이 노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그렇다면 나는 내일부터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벼랑 끝에 서 있는 건 새로운 희망인건지 그냥 끝인 건지. Let it cr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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