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4시의희망

Maximilian Hecker - Dying

시월의숲 2012. 12. 25. 21:26



처음 이 음악(노래보단 음악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을 누군가의 플래닛(지금은 사라져버린)에서 들었을 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건 뭔가,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이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지도 않고, 한없이 늘어지지도 않지만, 끝없이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바다와 달의 보이지 않는 이끌림처럼, 그 멜로디는 내 안에서 한없이 되풀이되며 울렸다. 그건 신기하고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온몸과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떠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생 때 였던가? 많이 춥고, 초라하고, 궁색했던가? 어찌되었든 이 음악은 당시의 나를 위로했으며, 어떤 아름다움과 안도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도대체 이 음악의 제목은 무엇인가, 누가 이 음악을 만들었는가 찾아보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막시밀리언 해커라는 뮤지션을 알게되었고, 이 음악의 제목이 'Dying'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얼마나 아이러니하고도 적절한 제목인지. 나는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을 말하고 있지만, 죽음을 넘어선, 한없는 비탄과 탄식을 넘어선, 절망의 끝에 다다른 자의 알 수 없는 안도와 희열이 느껴진다. 죽음이 이렇듯 아름다울 수 있다면, 우리는 슬픔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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