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한강, 『노랑무늬영원』, 문학과지성사, 2012.

시월의숲 2013. 3. 27. 21:08

 

 

 

왜 한강의 소설에 끌리는 것일까?

 

한강의 최근 소설집인 『노랑무늬영원』을 읽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란 말은 무언가를 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것은 업무가 바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봄이 오고 있음을(이미 왔음을!)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인지, 자주 피곤했고, 그래서 무언가를 쓰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강의 소설을 읽고 나서 느꼈던 감정들을 쓰고자 하는 열망은, 알 수 없는 의무감으로 계속 나를 짓눌렀다. 결국 오늘에서야 마음을 다잡고 블로그에 들어와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었다. 나는 왜 한강의 소설에 끌리는 것일까? 무엇이 그의 소설을 읽고 나서 쓰고자 하는 열망에 휩싸이게 하는 것일까?  나는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책의 표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보면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다는 듯이.

 

기존에 한강의 소설에서 느껴지던 분위기가 이 책에서도 느껴졌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심연 같은 것, 내면에 담긴 어둠, 광기, 예술적인 것에의 열정, 상실, 욕망 같은 것들. 어느 순간 금이 가고, 깨어지고, 돌이킬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받기를 바라지도 않는 존재들의 어쩔 수 없는 몸부림. 교통사고 때문에 손이 망가진 화가(「노랑무늬영원」)와 조금만 부딪쳐도 피멍이 들고, 조금만 상처를 입어도 수혈을 해야만 하는 화가(「파란 돌」), 사랑하지만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존재들(「에우로파」). 전반적으로 어둠 쪽에 가까운 이야기들임에도 그 속에 미미한 빛 또한 분명히 감지되는 이야기들. 어둠과 빛을 함께 지닌 인간들의 스산하고도 아린 풍경이 가슴 먹먹하게 다가온다. 특히 표제작인 「노랑무늬영원」을 읽는 동안은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멀쩡한 손과 팔목이 아팠고, 순간순간 막막한 마음이 들어 몇 번의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그 소설이 다른 어떤 소설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진 건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도마뱀의 잘린 앞다리로 새로운 앞다리가 생겨나듯,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결코 절망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그 소설은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왜 한강의 소설에 끌리는가? 나는 아직 대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직 쓰이지 않은 한강의 소설들에 들어있을 것이고, 그 소설들이 대신 내게 말을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들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희랍어시간>을 쓰고 난 후의 인터뷰였던가? 그는 더디지만 조금씩 글을 쓴다고 했다. 그 말, '더디지만 조금씩'이라는 말이 한강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독특한 울림을 내게 주었다. 더디지만 조금씩 쓰여지는 그의 소설을 나는 언제고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겠지. 끌림의 이유를. 그의 소설을 읽고나면 드는 어떤 먹먹함의 정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