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시월의숲 2013. 8. 9. 22:56

*

그동안 덥다고 투덜댔는데,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도 전에 덥다고 엄살을 떤 격이 되었다. 본격적인 더위, 본격적인 열대야란 지금부터인데. 장마가 물러가고 무더위가 찾아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관적으로 습하고, 일관적으로 덥다. 호들갑스러운 일기예보는 언제 온도가 40도를 갱신할까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엉덩이에 땀이 차고 숨쉬기가 힘들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 우리나라에서도 더위 때문에 사망한 노인들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그들은 모두 촌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었다. 뜨거운 여름 태양볕도 그들에게는 일을 해야하는 의무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았을까?

 

*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는 나를 제일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나는 나를 속여온 것이다. 내가 나를 속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어쩌면 남들이 먼저 눈치 챘을지도 모르는 나에 대한 일들을 정작 나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척 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것조차 알 수 없다. 내가 했던 수많은 다짐들이 결국은 나 자신을 기만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일은, 정말이지 슬프고 쓸쓸한 일이다.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란 불가능한 것일까. 선택하지 않을 것을 선택할 자유란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현실 아닐까.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면, 피를 흘리던지, 아니면 계속 자신을 기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피를 흘리지 않고 자신을 기만하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이므로.

 

*

그래서 어쩌면 나는 친구와 멀어질지도 모르겠다. 가족과도 멀어질지 모른다. 그것이 내가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묵묵히 받아들일 것이다. 애초에 친구와 가족이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춘기 때나 할만한 생각을 지금에서야 하는 것이 슬픈 일이긴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나는 혁명가는 되지 못한다. 그것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내게는 용기가 없다. 그냥 나 자신을 사라지게 하는 편을 택할 것이다. 갑자기 친구란 말이 무척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내게 친구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 또한 가족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모든 것이 희미해지거나 어두워진다. 모든 것이 새삼스럽다. 새삼스럽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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