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1999.

시월의숲 2014. 2. 12. 22:56

아아, 이렇게 벅차고, 이다지도 뜨겁게 마음속에 달아오르는 감정을 재현할 수 없을까?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그대의 영혼이 무한한 신의 거울인 것처럼, 종이를 그대 영혼의 거울로 삼을 수 없을까?(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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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게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다가 약간 남아 돌아가는 자유 시간이라도 생기면, 도리어 마음이 불안해져서 거기서 벗어나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쓴단 말이다. 아아, 이것도 인간의 운명이라고 할 것인가!(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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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일생이 일장춘몽에 지다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절감하였겠지만 내 주위에서도 그 느낌은 항상 그림자처럼 맴돈다. 인간의 활동이나 연구도 어쩔 수 없는 한계에 사로잡히는 것을 볼 때, 그리고 모든 활동이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집중되고 있으며, 욕망이라는 것 자체에도 우리의 불쌍한 삶을 연장시키는 것 말고는 다른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통찰할 때, 그리고 또 연구가 어느 단계에 올라 만족할 수 있음은, 인간이 자신이 갇혀 있는 감방의 벽에다가 여러 풍경과 형상들을 화려하고 밝은 색으로 그려놓고 기뻐하고 있는 식의 허울 좋은 체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이 모든 것을 생각해 볼 때, 빌헬름, 나는 할말이 없어지고 만다. 나는 자신의 내부로 되돌아가서 그곳에 하나의 세계를 발견한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명확한 표현이나 생생한 힘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오히려 막연한 욕망 속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내 감각 주변을 어슴푸레하게 떠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한결같이 꿈을 꾸면서 그 세계에다 미소를 던진다.(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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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벗이여, 우리 어른들과 동등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오히려 본보기로 삼고 우러러보아야 할 이 어린이들을 사람들은 항용 하인처럼 다루고 있다. 어린이들은 의지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우리 어른들은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인가? 도대체 어디 그런 특권이 있다는 것이지? 우리가 그들보다 나이가 많이서 더 현명하단 말인가? 하늘에 계신 거룩한 하느님, 당신의 눈으로 보시면 오직 나이 많은 어린애와 나이 적은 어린애가 있을 뿐이고, 그 밖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그 어느 쪽을 더 기꺼워하시는지는 당신의 아드님이 까마득한 옛날에 이미 일러주셨나이다.(50~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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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사랑이 없다면, 이 세계가 우리 마음에 무엇을 뜻하겠는가! 그것은 마치 불빛 없는 마술 환등 같지 않을까? 불을 그 속에 넣어야 비로소 다채로운 영상이 흰 벽에 비치게 되는 것! 비록 그것이 순간적인 환상, 슬쩍 비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씩씩한 아이들처럼, 그 환등 앞에 서서 이상한 그림자에 황홀해진다면 그것 역시 우리에게 행복을 자아내 주는 것이 아닐까!(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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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동시에 불행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연 변할 수 없는 것일까?

생생한 자연을 받아들이는 내 가슴에 넘치는 뜨거운 감정은, 그렇게도 풍부한 기쁨을 내 마음속에 넘쳐흐르게 하고, 주변 세계를 천국처럼 만들어주었건만, 이제는 그것이 내게 무자비한 박해자가 되고,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는 마귀로 변하여, 어디를 가든 나를 따라다니며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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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꽃이란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꽃들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지는가! 열매를 맺는 꽃들은 얼마나 그 수가 적으며, 그 열매 가운데서 무르익는 것은 또 얼마나 적단 말인가! 그러나 익은 열매도 상당수 있긴 있다. 그런데도 나의 형제여! 우리는 익은 열매를 소홀히하고 업신여길 뿐만 아니라, 맛도 보지 않은 채 썩혀버릴 수 있단 말인가!(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