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4시의희망

임동혁&김정원, Schubert, Fantasy in F minor D.940.

시월의숲 2014. 5. 19. 23:24

 

 

처음엔 <밀회>를 보지 않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이 있는 여인과의 사랑이야기라고 해서 그저 그런 통속극이겠거니 생각했다. 김희애와 유아인의 출연이 화제가 되었지만, 나에겐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더구나 케이블에서 하는 방송이라는 선입견도 있었다. 케이블이 공중파보다는 좀 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곳이므로, 자칫 흥미 위주의,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저급한 드라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공중파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막장드라마를 우리는 정말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보고 있지 않는가? 지루함과 노골적인 저급함에 대해서는 공중파나 케이블이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케이블, 특히 종합편성채널에서 하는 드라마라는 선입견을 잠시 접어둔다면, <밀회>는 공중파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수많은 드라마보다 전체적인 완성도나 영상미에서 훨씬 빼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처음 <밀회>를 본 것은 유투브를 통해서였다. 유투브를 통해 음악을 듣다가 우연히 1회분의 영상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고, 당시 해당 드라마에 대한 꽤 많은 기사를 보았으므로 어떤 스타일의 드라마인가 궁금해서 클릭을 했다. 그리고 빠져들었다. 그다음부터는 케이블의 정규편성 시간에 맞춰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그들이 원하는 마수에 걸려든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가 재미없었더라면,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처음 10분을 보다가 그만두었거나, 참을성 있게 2편까지 보다가 그만두었을 것이다. 무엇이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한 것인가? 두 주연 배우의 연기가 뛰어났고, 예상외로 둘의 앙상블이 좋았으며, 각본이 괜찮았고, 영상미가 뛰어났기 때문에? 물론 그렇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소재인 음악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드라마 전편에 흘러넘치는 피아노의 선율이 없었다면 이토록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인지 알게 되는 것. 아마도 사랑은 그런 것이리라. <밀회>에서는 그 매개가 되는 것이 바로 '음악'이었다. 음악 때문에 드라마가 비소로 특별해질 수 있었다. 둘을 이어주고, 감응하게 하고, 나누게 하는 것.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 나는 이 곡이 드라마의 주제곡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통해서 처음 이 곡을 들었지만, 듣자마자 빠져들었다. 어쩌면 저 음악 때문에 이 드라마가 탄생하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

극 중 오혜원(김희애)은 이선재(유아인)를 향해 '음악이 갑'이라고 말한다. 그가 그것을 새삼 느끼게 한 것이다. 그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처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처럼 성큼성큼 그녀의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로 인해 그녀는 자신이 우아한 노예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름다움을 위해, 숭고한 것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추악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깨부술 용기와 결단을 그를 통해서 얻는다. 아무 생각 없이 발 뻗고 자는 것이 얼마나 꿀맛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 또한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준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알아봐 준 최초의 그녀를 그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그녀가 몸담은 추악한 세계에 물들지 않고, 그와 그녀 모두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이선재라는 인물에게 여성 작가의 판타지가 다소 구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스토리의 개연성에는 크게 지장이 없는 것 같다. 하긴 두 인물 모두 비현실적 캐릭터이긴 하다.

 

 

누군가는 드라마를 보지도 않고 유부녀와 연하남의 사랑이야기라는 설정 자체를 불편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편할 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욕망은 다양하고 이미 노골적일대로 노골적인데. 문제는 그런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는가에 있다. 결국은 진부할대로 진부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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