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나의힘

주동자

시월의숲 2014. 5. 29. 00:15

 

 

장미꽃이 투신했습니다

 

담벼락 아래 쪼그려 앉아

유리처럼 깨진 꽃잎 조각을 줍습니다

모든 피부에는 무늬처럼 유서가 씌어 있다던

태어나면서부터 그렇다던 어느 농부의 말을 떠올립니다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경멸합니다

나는 장미의 편입니다

 

장마전선 반대를 외치던

빗방울의 이중국적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이

모두 다 아는 일이 될 때까지

빗방울은 줄기차게 창문을 두드릴 뿐입니다

창문의 바깥쪽이 그들의 처지였음을

누가 모를 수 있겠습니까

 

빗방울의 절규를 밤새 듣고서

가시만 남아버린 장미나무

빗방울의 인해전술을 지지한 흔적입니다

 

나는 절규의 편입니다

유서 없는 피부를 경멸합니다

 

쪼그려 앉아 죽어가는 피부를 만집니다

 

손톱 밑에 가시처럼 박히는 이 통증을

선물로 알고 가져갑니다

선물이 배후입니다

 

 

 

- 김소연, '주동자' 전문,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사, 2013.

 

 

*

나는 시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할 수 있을까. 어떤 느낌에 대해서 말을 하지만, 나는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말을 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순간 멍해지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머릿속이 방전된 듯 텅 비어버린다. 그건 내가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말하려고 하기 때문인가. 그럴 때면 나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입을 다문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말을 잃는다. 말은 흩어지고 나는 그것을 주워담지 못한다. 나는 약간의 절망감을 느낀다. 김소연의 시를 읽고 있으면 어쩐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명확하게 잡히지는 않지만 명징하게 만져지는 어떤 느낌. 모순적인 느낌. 그런 느낌의 덩어리를. 그것은 단호하지만 아름답다. 단호함은 단정적인 어조에서 나오고 단정적인 어조는 묘하게 아름다운 느낌을 풍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을 경멸하고, 유서 없는 피부를 경멸하고, 자신이 장미의 편임을, 절규의 편임을 당당히 선언하는 자는 단호하게 아름답다. 선동적으로 아름답다. 조용한 강가에 던져진 돌처럼, 그 돌이 그려내는 파문처럼, 느낌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파고든다.

 

장미꽃이 한창 '투신'하는 지금, 나 역시 장미의 편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유서 '있는' 피부가 되어야 하리라. '그럴 수 없는 일이 모두 다 아는 일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