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나의힘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시월의숲 2018. 10. 24. 23:09

아이들은 장갑차를 타고 국경을 지나 천막 수용소로 들어가고 할미는 손자의 손을 잡고 노천 화장실로 들어간다 할미의 엉덩이를 빛은 어루만진다 죽은 아들을 낳을 때처럼 할미는 몽롱해지고 손자는 문 바깥에 서 있다 빛 너머로 바람이 일어난다

늙은 가수는 자선공연을 열고 무대에서 하모니카를 부른다 둥근 나귀의 눈망울 같은 아이의 영혼은 하모니카 위로 날아다닌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빛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아이의 영혼에 엉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영혼처럼 허덩거리며 하모니카의 빠각이는 이빨에 실핏줄을 끼워넣는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장갑차에 아이들의 썩어가는 시체를 싣고 가는 군인의 나날에도 춤을 춘다 그러니까 내 영혼은 내 것이고 아이의 것이고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 허수경,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전문,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창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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