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더딘 하루

시월의숲 2015. 12. 16. 21:32

돌아보면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가버렸음을 깨닫고 놀라게 되지만, 어느 날은 하루가 더디게만 가는 날이 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어떤 일로 인해 하루 종일 정신적으로 시달려야만 했다.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란 것은 아니었으나, 이상하게도 시간이 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느리게만 가는 시간 때문에 기묘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것은 애초부터 운에 좌우되는 경향이 많은 일이었으나, 막상 결과가 발표되고 난 후에는 전후 사정이나 평가 기준의 주관성 따위의 명백한 근거들은 아예 거론되지 않거나 거론된다 하더라도 변명으로밖에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는 객관적이지 못한 점수와 순위를 성토하면서 과거 몇 년 동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것이 얼마나 허술하고 어이없는 운에 좌우되는지 분석해보라는 진지한 조언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조언과 격려, 공감어린 분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이미 그것은 아무리 정교하고 분석적인 데이터를 들이민다고 해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질 성질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위에 있는 사람들, 직장의 상사들에게 중요하고도 필요한 건 과정이 아니라 결과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결과가 좋으면 좋은 것이고, 과정이 아무리 투명하고 정당하였다 해도 결과가 나쁘면 그 일은 나쁜 것이 된다. 그리고 결과가 좋지 않은데 대한 그 모든 비난은 결국 담당자의 몫이 되어 버린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조직 생활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런 일을 겪는데 따르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쉬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화가 나기는 했으나 그것을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로 향하게 했다. 나는 나에게 화를 냈다. 그랬더니 이내 화가 가라앉았다. 내가 겪은 일이 결코 나 혼자만 잘해서는 되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타인을 향해 발산하려 했다면 나는 더욱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화를 냈고, 나 자신의 잘못으로 돌렸다. 내가 잘못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타인들의 잘못이나 혹은 운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일에는 나 자신의 잘못도 있고, 타인에 의한 것도 있고, 운에 의한 것도 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만 탓하면 그만이다. 내 능력 밖에 있는, 나 자신도 차마 어쩌지 못하는 타인과 운(오, 신이시여!)에 대해서 화를 낸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있겠는가? 그것만큼 나 자신을 쓸데없이 소모시키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상사가 하는 말들을 그저 묵묵히 들을 수 있었다. 어찌할 것인가? 나는 담당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오로지 그것밖에는 없었으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을 굳이 이해하려 드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누군가 그 일로 인해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면 '거참, 이상한 사람이네' 하고 넘기면 그만이다. 어찌할 것인가? 정 견디기 힘들다면 둘 중에 누군가가 떠나면 그만인 것이다. 어차피 나에겐 미련이란 것이 남아 있지 않고 남아 있을 이유가 없으므로.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