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곡성(哭聲)

시월의숲 2016. 5. 15. 21:28

 

 

 

<스포일러 주의>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으로는 늪에 빠지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몸은 자꾸만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혹은 누군가 서서히 목을 조르는 것도 같았고, 보이지도 않고 알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분명히 감지되는, 불쾌하고 음산한 무언가에 휘둘리고 있는 것도 같았다. 사람들의 잘못된 확신과 믿음이 집단적인 광기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를 영화 속 허구라고만 치부하기에는 그 메시지가 너무나도 강렬했고, 너무나 실제적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영화에 나오는 곡괭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은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늪에서 너무나도 헤어 나오고 싶다는 감정이 강렬하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저 광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속 시원히 밝혀지기를 바랐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 한없이 모호한 영화에서 어리석게도 한없이 명쾌한 답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저 핏빛 늪과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이내 그 모호함이 이 영화의 무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영화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실재로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일 수도 있고, 인간들의 마음 속에서 자라나는 의심과 불안, 그릇된 믿음, 폭력, 나약함 혹은 절실함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무서워 해야 하는 것은 악마도, 귀신도 아닌, 우리들 안에 잠재해 있는 광기라는 것을 영화는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버섯과 외지인(일본인)은 단지 그것을 촉발시키는 미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이 글을 쓰고 난 후, 문득 궁금해져서 이동진의 영화평을 찾아 읽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시스템은 철저히 무기력하고, 인간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필사적으로 몸을 놀린다. 그리고 두려움은 늘 밖에서 온다. 나홍진이 바라보는 악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마성이 아니다. 그건 외부로부터 지금 이곳에 불쑥 끼워진, 삶의 이해할 수 없는 기본 조건이다. “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광기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그는 그것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마성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지금 이곳에 불쑥 끼워진, 삶의 이해할 수 없는 기본 조건'이라고 말이다. 나는 이 부분이 흥미로웠고,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늘 답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 현혹당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동진의 말처럼, 거기에 인식의 비극성이 있는 것인지도.

'봄날은간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0) 2016.10.03
밀정  (0) 2016.09.25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0) 2016.03.27
크림슨 피크  (0) 2015.11.28
사도  (0) 2015.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