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쇼팽과 모차르트

시월의숲 2018. 12. 16. 20:26

얼마전 JTBC 뉴스룸에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나왔다. 나는 그때 마침 뉴스룸을 보고 있었는데, 조성진이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채널을 돌리고 말았다. 앵커가 그의 연주가 마지막에 준비되어 있다는 말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도대체 이 심리는 무엇인지?). 하루 뒤에 유투브를 찾아 그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실황을 봤다. 그리고 가만 생각하니 내가 그의 앨범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늦잠을 자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조성진이 생각났다. 점심을 다 먹고 텔레비전을 끄고 조성진의 앨범을 찾아 오디오에 넣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나는 왜 그의 앨범을 듣지 않았는지(혹은 못했는지?). 음악을 듣지 않고 CD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나는 그의 음악을 다 들었다고 착각했던 것은 아니었나. 아니, 내가 그의 앨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한참을 생각해야 했으니, 이런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조차 난감하다. 그리고 방금 조성진이 JTBC 뉴스룸에 나와 연주했던 모습을 유투브로 보았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환상곡이었는데, 어쩌면 그의 다음 앨범은 모차르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 적고 나서(키보드를 치고 나서) 혹시나 몰라 그의 앨범 발매 리스트를 살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벌써 지난 달에 모차르트 앨범이 나왔다.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오는 자조적인 웃음. 나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에 살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변하고, 생성되고, 사라지는데 나만 홀로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건 비약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든다. 이건 쇼팽과 모차르트와는 아무 상관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상관없지는 않은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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