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는 가장 편안한 방법

시월의숲 2018. 12. 11. 18:13

오전부터 내리시 시작한 눈이 저녁이 된 지금까지 내리고 있다. 오늘은 두 시간 정도 일찍 퇴근을 했는데, 퇴근하면서 본 풍경은 눈길 운전에 쓰이는 신경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었다. 모든 산과, 나무와, 들과, 논이 하얀 눈으로 뒤덮힌 모습은 그것이 평소 아무렇지 않게 보아넘긴 흔하디 흔한 풍경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다른 세상의 풍경처럼 보였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운전 중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눈으로만 보았는데, 그것이 어찌그리 아쉬운지. 눈만 한 번 깜빡이면 그때 바라본 풍경이 마치 사진처럼 찍혀서 내 기억 속 폴더에 저장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추어 서서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 앱을 누르는 거추장스러운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텐데.


그런 쓸데없는 아쉬움과 눈 덮힌 풍경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집으로 왔다. 시골의 도로를 지나 번화한 도시의 도로로 접어들자 풍경은 이내 그 빛을 잃고 살벌해지고 말았다. 시골의 눈과 다르게 도시에서의 눈은 제 힘으로 쌓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 듯 느껴졌다. 그것은 쉽게 지저분해지고, 교통체증을 유발하며, 자연의 경이로운 현상이 아니라 그저 치워야 하는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눈이 오면 도로 위의 차들은 눈에 띄게 느려지지만 한가지 활기를 띠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이들의 심장이다. 눈이 오면 아이들은 뛰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눈을 뭉치고, 던지고, 눈사람을 만든다. 소리를 지르고, 웃으며 눈밭을 뛰어 다닌다. 그것은 눈덮힌 풍경에서 느껴지는, 모든 소리를 빨이들이는 고요한 경이로움과는 달리 발산하는 생명력이 느껴지는 경이로움이다.


집으로 오는 길이 다소 늦어지긴 했지만, 눈이 온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몇 년 전에 나는 오늘처럼 눈이 많이 내린 아침, 시골길을 아주 느린 속도로 운전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보았던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풍경을 아직도 기억한다. 눈은 그렇게 평범하고, 익숙하며, 일상적인 풍경들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눈이 오는 풍경을 감상하는 가장 편안하고도 최상의 방법은 그냥 집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다. 준비과정은 간단하다. 물을 끓여 따뜻한 차를 준비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들고 창가로 다가간다. 커튼을 걷고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본다. 따뜻한 찻잔의 온기를 느끼며 차를 한모금 입에 넣는다. 이것이 전부다! 아, 내일 출근길의 걱정은 잠시 접어둔다. 걱정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니까. 오로지 지금 내리는 눈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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