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처음 맞는 주말인 것처럼

시월의숲 2019. 12. 1. 15:55

시간이 뭉텅뭉텅 베어나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벌써 12월이다. 올해의 1월이 생각나지 않듯, 12월도 생각나지 않게 될 것이다. 처음과 끝. 그리고 다시 시작. 일상의 반복. 계절의 반복. 하지만 어찌 반복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동일한 반복이 아니라 매번 다른 시간, 일상, 계절일터인데. 올해의 12월과 작년의 12월이 같지 않듯이. 이런 시간의 흐름에 대한 상념은 바쁜 일상을 살다가 문득 한숨을 돌리거나, 문득 달력을 넘겨볼 때, 혹은 계절의 흐름을 느낄 때 찾아온다. 그동안 무슨 일로 그렇게 바빴던 것인지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피곤이 누적되어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살고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잠시 어딘가에 머리를 닿기만 해도 스르르 잠에 빠져들 것만 같았던 시간들.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던 그때의 시간들. 그런 시간들을 지나서 아직도 나는 살고 있고, 이렇게 잠시 정신이 드는 순간이면 아무런 맥락도 없는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모처럼 맞은 주말처럼 한껏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늦게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 간단히 아침겸 점심을 떼우고, 텔레비전에 하는 영화를 보다가, 컴퓨터를 켰다. 도서관에 가서 그동안 거의 읽지 못했던 책을 다시 읽어볼까 생각했지만,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어서 어딘가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홍차를 한 잔 우려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는 생각만이 가득하다.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게으르도록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변명인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어쨌거나 한껏 게으르고 싶다. 그런 생각만으로 일주일을 버틴다. 누군가는 말하리라. 배부른 소리하지 말라고. 하지만 당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상대적인 면을 가지고 있음을. 아, 이렇게 혼자 자문자답하는 것도 얼마만인지! 오늘은 그렇게 한껏 게으르도록 하자. 마치 처음 맞는 주말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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