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아니 에르노, 마크 마리, 『사진의 용도』, 1984BOOKS, 2018.

시월의숲 2020. 8. 22. 23:29

저녁 식사 후에 치우지 않은 식탁, 옮겨진 의자, 전날 밤 섹스를 하다가 아무 데나 벗어던져 엉켜 버린 옷들, 나는 줄곧 우리 관계의 시작부터 잠에서 깨어나 그것들을 발견하며 매료되고는 했다. 매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각자가 물건을 줍고 분리하며 그 풍경을 허물어뜨려야만 하는 일은 내 심장을 옥죄었다. 단 하나뿐인, 우리들의 명백한 쾌락의 흔적을 지우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어느 날 아침, M이 떠난 후 잠에서 깨어났다. 계단을 내려와 햇살 속에서 옷가지들과 속옷, 신발이 복도 타일 위에 흩어져 있는 것을 봤을 때, 나는 고통스러운 감정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처음으로 그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욕망과 우연이 낳은, 결국 사라져 버릴 이 배열을.(9쪽)

 


 

그리하여 그녀는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대한 글을 썼다. 그녀에게 있어 사진은(적어도 흐트러진 옷가지들을 찍는 그 순간에는) 추억을 남기거나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연이 만들어낸 순간을 포착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것은 곧 사라져버릴 자신의 쾌락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었으며, 그러한 보이지 않는 감정의 순간을 물질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또한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식이자,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픈 무의식적인 발로였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파트너와 쾌락의 증거(?)를 찍고 그것을 글로 쓰고 급기야 책으로 출판하기까지 했지만, 그 와중에 유방암 판정을 받아 항암치료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하며 무용한 이 책이 특별해지는 순간이 바로 그 지점이다. 이 책의 서문을 여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에로티즘은 죽음 속까지 파고드는 생(生)이다 - 조르주 바타유'. 나는 바로 이 문장 때문에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책 속에 실려 있는, 흐트러진 옷가지들을 찍은 사진들은 내게 큰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그것은 그저 지저분하게 흐트러진 옷과 신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섹스를 하고 난 후의 흐트러진 옷이라는 점에서 에로틱한 상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아니 에르노와 그녀의 연인 마크 마리의 멋드러진 글에도 불구하고)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 제 3자의 입장에서 그 사진들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내가 이 책을 조금 특별하게 느꼈던 이유는 앞서도 밝혔지만, 그 모든 성적인 유희들 속에서도 죽음의 그림자가 읽혔기 때문이다. 때로 나는 그 사진들과 그가 겪고 있는 항암치료가 무척이나 대조적이어서 의아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감정에 무척이나 솔직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솔직하고 자유분방하지 않았다면(그녀의 나이가 그의 젊은 연인보다 스무 살 이상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숨겨야 되는 사회적인 분위기였다면 결코 이런 책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예술적이나 무용하되, 우리들이 가진 쾌락과 죽음의 속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꽤 유용한 책이기도 하다. 이건 무척 모순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