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2008.

시월의숲 2022. 1. 9. 23:47


이 소설엔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서른아홉 살의 매력적인 여자 폴, 폴의 현재 애인이지만 그녀 몰래 바람을 피우는 남자 로제, 폴의 새로운 애인이자 연하의 열성적인 남자 시몽. 말하자면 삼각관계라고 할까. 폴은 로제를 사랑하고 로제 또한 폴을 사랑하지만, 자유로운 로제는 쾌락을 좇아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이를 폴도 알고 있다. 헤어지고자 마음을 먹던 차에 폴은 시몽을 만나고, 폴보다 열네 살이나 어린 시몽은 폴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시몽은 적극적으로 폴에게 구애를 하고 폴은 로제와의 관계에 환멸을 느끼던 차에 잘생기고 헌신적인 시몽을 보자 자연스레 사랑에 빠지고 만다. 폴, 로제, 시몽 이들의 끝은 어떻게 될까?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구조다. 우리들이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삼각관계가 거의 다 이런 식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 소설이 도식적인 삼각관계의 진부한 이야기와 차별되는 지점은 바로 이들 세 인물의 심리묘사에 있지 않나 싶다. 인물들의 마음속 세세한 감정의 결을 이토록 유려하고 근사하며 감각적으로 그려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던가? 나는 마치 연애소설을 처음 읽는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그래, 이런 게 연애소설이지! 하면서. 하지만 단순히 연애소설이라고만 하기에는 그 무게감 또한 만만찮다.

나는 늘 삼각관계 이야기를 볼 때 불만이었던 점은 왜 주인공은 꼭 나와 반대되는 결정만 하는가였다. 분명 내가 보기에 저 사람이라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왜 주인공은 늘 원래 사랑하던 사람을 잊지 못하는 걸까. 이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내겐 시몽이 (나이는 어리지만) 더 어른스럽고 믿음직스러우며 지극히 사랑스러운데도 폴은 로제를 잊지 못하고 결국 로제를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그렇게 헌신적인 시몽 또한 언젠가는 로제처럼 될 수도 있다는 말일까?) 그렇다고 폴이 시몽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로제는 어떤가? 로제 또한 폴을 사랑하면서도 로제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육체적 쾌락에 탐닉하는 것을 그만두지 못한다. 이 무슨 사랑의 장난이란 말인가? 사랑이 장난인가?

이런 내 생각은 어쩌면 아직 사랑해보지 못한 자의 투덜거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폴의 마음도, 로제의 마음도, 시몽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한다. 소설 속에 묘사된 그들의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읽고서도 나는 그들의 마음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설은 시몽의 적극적인 애정공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몽에게 안착하지 못하고 로제에게 돌아가는 폴이 로제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다시 돌아왔지만, 헤어지려고 결심했던, 익숙한 고통을 안겨주던 바로 그 전화를 받는 것으로. 사랑은 자신에게 가하는 학대의 다른 이름인가?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다른 사람 또한 사랑할 수 있고, 그 또한 사랑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그런 관계라는 것은. 사랑이란 그렇게 하찮은 것이었던가. 나는 사랑을 너무 엄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혹은 내면의 도덕적 잣대가 나를 가로막고 있는 걸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순간의 감정일 뿐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사랑한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은 무엇을 남기는가. 사랑이라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감정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 소설은 사랑이라는 것을 매개로 한 남녀 간의 미묘하고 난해하며 모호한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감정이란, 특히나 사랑의 감정이란 결코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알 수 없는 이끌림이라는 것. 하여 설명하려 할수록 난감한 기분에 휩싸이고 만다는 것. 사랑이 완전히 끝나고 난 뒤에라야 가까스로 그것에 대해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사랑이 언제 끝나는지조차 우리는 알 수가 없다는 것.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누군가 이런 쪽지를 건넨다면 당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