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길을 잃는다.(358쪽, 「브라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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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달걀과 닭』을 읽었다.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나니 약간의 현기증이 인다. 길을 잃은 기분이다. 내가 제대로 왔는지 알 수 없어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여긴 어디인가, 하고. 나는 머리를 살짝 짚은 후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표시해 둔 페이지를 다시 펼친다. 그것은 내가 가까스로 그녀를, 이 책을 이해해보기 위한 몸부림이다. 나는 그 문장들 속에서 어떤 실마리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자그마한 단서라도(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협한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기 위해 주의를 기울인다. 그 문장들은, 그녀의 글 속에서 하나의 편협한 사실만을 드러낼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와 같이, 난해한 글을 쓰는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면 하는 나만의 방식이기도 하다.
우선 책을 읽는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문장들을 대할 때면 잠시 읽기를 멈춘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상징성이 있는지,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알아낼 수 없는 것이므로, 괜히 그것들을 생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활자로 다시 돌아온다. 나는 글의 표면을 읽는다. 문장과 단어와 어절과 음절이 주는 느낌을 읽는다. 그러다 보면 문득 최소한 내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장 혹은 순간 나를 매혹시키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나는 그 페이지를 적어둔다. 그리고 다시 읽어나간다. 그런 식으로 계속 읽어나간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 한번 더 내가 메모해 놓았던 페이지들을 천천히 읽는다. 내가 어떤 문장에 매혹되었는지 확인해보듯이. 그 매혹이 여전히 유효한가 확인하듯이.
그렇게 나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읽었다. 읽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여전히 길을 잃은 기분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문장이라도 내게 매혹적인 울림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그녀는 말한다. '나는 길을 잃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길을 잃는다.'라고. 나는 그녀의 글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또 말한다.
"귀 너머에는 소리가 있다. 시각의 먼 끝에는 풍경이 있으며, 손가락의 끝에는 사물이 있다―그곳으로 나는 간다.
떠나갔으며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처럼―그곳으로 나는 가고 있다.
나는 내가 선언하는 하나의 나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무를 이야기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죽음으로만 나는 확장되고 와해될 것이며, 그때 누군가가 애정을 담아 내 이름을 말하게 되리라.
내 가엾은 이름을 향해서 나는 간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나는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사랑의 모서리에는, 우리가 있다."(294~295쪽, 「그곳으로 나는 간다」)
나는 저 문장들 속에 그녀 글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그녀는 '귀'와 '시각'과 '손가락'이 아니라 '소리'와 '풍경', 그리고 '사물'이 있는 곳에서 그것들을 쓴다. 떠나갔으며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그녀는 쓴다. 그녀는 무를 이야기하며,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가엾은 이름에 대해서 쓴다. 결국 그녀는 무엇을 말하고(쓰고) 있는가? '나는 사랑을 말한다.' 그녀는 대답한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아픔으로 다가올 그런 일들'에 대해서 그녀는 쓰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통해 감히 내가 그녀에게서 어떤 특정한 응시의 방식, 악수를 하는 특별한 모습을 얼핏 보았다고 '오해'한다. 그것은 아주 명백하고도 확실한 착각이다. 맙소사, 사랑이라니!
"우리는 종종 서로를 알아본다. 어떤 특정한 응시의 방식, 악수를 하는 특별한 모습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16쪽, 「달걀과 닭」)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달걀과 닭』, 봄날의책,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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