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오랫동안 나는 슬픔에 대해 생각해왔다

시월의숲 2022. 1. 16. 23:07

 

오랫동안 나는 그 일을 생각해왔다.

생각하고 생각해 마침내는 이해해보려고 나는 이 방에 머물고 있다. 오래전, 이 방 바깥에서 내 등을 두드리며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 이가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그의 이름이 뭐였는지 내가 어쩌다 그 사람을 만났는지 그가 내게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조차 기억해낼 수 없다. 밤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어. 컴컴한 모퉁이에서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는 나를, 나는 왜 이해할 수 없는가.(황정은, '웃는 남자' 중에서 - 소설집, 『아무도 아닌』 수록)

 

 

*

오래전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을 읽었을 때만 해도 나는 이 작가에 대한 막연한 인상만을 품고 있었다. 지금 그 소설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이번에 읽은, 그 소설집 보다도 더 이전에 쓰인, <파씨의 입문>도 읽은 지 불과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 기억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나는 희미해져 가는 것의 조그만 실오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인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내가 써놓은 것을 읽는다 해도 막연한 분위기 혹은 느낌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만이라도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것일까. 그런데 그것만이라도 어딘가. 그 실오라기 같은 느낌이라도 남아 있다면. 남아서 내 마음에 아주 조그만 파문이라도 일게 할 수 있다면.

 

오랫동안 나는 이 책을 생각해왔다. 

생각하고 생각해 마침내는 이해해보려고 나는 이 방에 머물고 있다.

 

나는 이렇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래전에 읽었던 같은 작가의 다른 소설을 뒤적였다. 그리고 그것을 읽고 쓴 내 글도 뒤적였다. 그때 나는 어떤 심정이었나 알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들의 정체를 말로 표현하고 싶어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느꼈던 느낌들에 대해서, 이 작가의 스타일 혹은 분위기, 이 소설의 심연에 흐르고 있는 슬픔에 대해서 무언가 말할 수 있을 거라는 아주 조그만 확신을 가지고.

 

그렇다. 이 소설의 심연에는 다양한 슬픔이 도사리고 있었다. <야행>에서 느껴지는 막연하고도 난감한 슬픔, <대니 드비토>에서 느껴지는 한없이 담담한 슬픔, <낙하하다>에서 느껴지는 어쩔 수 없는 슬픔, <옹기전>에서 느껴지는 옹기의 주름과도 같은 묘한 슬픔, <묘씨생>에서 느껴지는 처연한 슬픔, <양산 펴기>와 <디디의 우산>에서 느껴지는 남루하고도 불합리한 슬픔, <뼈도둑>에서 느껴지는 눈처럼 시리고 아픈 슬픔, <파씨의 입문>에서 느껴지는 파도의 근원적인 슬픔. 이 모든 슬픔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슬픔의 얼굴을 말하자면, 그것은 담담함이었다. 담담한 슬픔. 슬픔이 이리도 담담할 수 있나. 이리도 담담하게 슬플 수가 있나. 그것은 격렬한 슬픔보다 더 슬프지 않은가 하고. 

 

오랫동안 나는 그 슬픔에 대해서 생각해왔다. 

생각하고 생각해 마침내는 슬픔이 슬픔이 아니게 되기를, 그 슬픔을 넘어서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느낀 것은 그것이다. 그런 마음이 되었다. 아마 작가도 그런 마음을 갖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어. 너의 슬픔을 감지할 수 있어. 컴컴한 모퉁이에서 슬픔에 찬 목소리가 담담하게 말한다. 때론 욕을 하기도, 때론 웃기기도, 때론 위로하기도 하면서, 목소리는 소설 속 인물들을 대하듯 그렇게 나를 위로하는 듯했다. 야생의 야비하고 무자비하며 불합리한 세상에서, 우리는 이미 죽었거나(<대니 드비토>), 한없이 낙하하는 중이며(<낙하하다>), 혹은 인간이 아닌 것(<묘씨생>)이 되어 인간의 발에 차여 죽임을 당할지언정, 그 시선이 그리 잔인하지만은 않고, 그저 담담함이 느껴지는 것은. 그리고 결국 이렇게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장의 얼굴을 분명하게 떠올릴 수 없었으나 그것보다는 분명한 기억이 남아 있었다. 촉각에 남아 있었다. 만지고 닿아서 느낀 것들. 만지고 만지고 만져서 손바닥으로 기억해둔 몸의 요철. 세포에 남았으므로 잊을 수도 없었다."(195쪽, '뼈도둑')

 

촉각에 남은 분명한 기억이 되기를. 만지고 닿아서 느낀 것들. 만지고 만지고 만져서 손바닥으로 기억해둔 몸의 요철. 세포에 남았으므로 잊을 수도 없는 것들이 되기를. 그리하여 슬픔마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기를. 넘어서게 되기를.

 

 

- 황정은, 『파씨의 입문』을 읽고.(창비,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