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이혜경 외, 《누구나, 이방인》, 창비, 2013.

시월의숲 2022. 5. 29. 14:26

그곳은 내 생애 가장 넓고 밝고 높은 방이었다. 그 방에서 보내는 시간을 나는 좋아했다. 정전이 잦은 저녁 어스름에 촛불을 켜놓고 방 안과 방 밖이 같은 밀도의 어둠으로 물드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이 좋았다. 아침마다 동쪽 창 아래 놓은 침대에 누워 눈은 뜨지 않고 정신만 뜬 채로 햇빛에 오래 몸을 담그고 있던 순간도 좋았다.(86쪽, 김미월, <몽골에서 부친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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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도착하고 나서 한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계획하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고 반성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위안이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경이로운 날들이었다. 나는 하루에 마흔여덟시간을 가진 사람처럼 살았다. 천천히 먹고, 오래 자고, 천천히 생각하고, 이따금 밖으로 나가 오래 걸었다.(86~87쪽, 김미월, <몽골에서 부친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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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 몽골을 회상하면 나의 기억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그때 그 풍경들이 아니다. 사람들이다. 그때 그 풍경 속의 사람들. 풍경에 얽힌 기억은 앨범을 들춰봐야 재생되지만 사람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즉시 재생된다. 기억 속의 풍경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재구성하는 것 또한 사람이다. 그러니 여행의 시작은 풍경에 있다 해도 여행의 완성은 사람에 있다고 할까.(105쪽, 김미월, <몽골에서 부친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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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어 '테힌'은 '산양'을 뜻하고 '조그솔'은 '멈추어 선 곳'을 뜻한다. 산양은 늙으면서 뿔이 점점 커지고 무거워진다. 그 무게가 견디가 어려울 정도가 되면 산양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벼랑 꼭대기에 이르면 뿔의 무게에 눌려 그곳에서 떨어져 죽는다고 한다. 그 벼랑을 몽골 사람들은 '테힌 조그솔'이라고 부른다.(110쪽, 김미월, <몽골에서 부친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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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쓰던 소삽하다는 말은 두가지 뜻을 지녔다.(···) 그 한가지는 '바람이 차고 쓸쓸하다'이고 다른 한가지는 '길이 낯설고 막막하다'이다. 바깥이란 그런 곳이다. 바람이 차고 쓸쓸한 날이 아니어도 낯설고 막막하며, 낯설고 막막하지 않더라도 바람은 차고 쓸쓸하다.(123쪽, 손홍규, <벤 야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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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란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숭고해질 수 있는 존재다.(138쪽, 손홍규, <벤 야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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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이 슬금슬금 내 마음에 발을 내리려 했다. 피해의식이 사람을 얼마나 방어적으로 만드는지, 나아가 공격적으로 만드는지 주변에서 보아 알고 있었다.(159쪽, 이혜경, <카리브 해에서 만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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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 홀로 있을 때, 나는 한결 자유롭고 편했다. 야간버스를 타고 밤길을 달릴 때면, 내가 이대로 세상에서 없어져도 아무도 알지 못하리라는 적막한 마음이 들었다. 파초잎 위의 물방울처럼 팽팽한 표면장력, 존재가 긴장하는 그 순간이 좋았다. 그래서 먼 곳으로 떠나는 걸 즐기는 걸까.(175쪽, 이혜경, <카리브 해에서 만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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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뢰해야 하는 건 어쩌면 그 실망의 예감인지도 모른다. 충족될 수 없는 기대. 만끽될 수 없는 이미지. 결핍감을 불러일으키는 간극. 아는 만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는 만큼 느낄 수 없음을 느끼게 만드는 빈틈. 그 틈으로, 날것의 무언가가 나를 치고 가기를. 거기에 나의 뱃길이, 나의 루앙프라방이, 나의 겨울이 있기를.(205쪽, 신해욱, <루앙프라방행 슬로우 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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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더듬는 말들만이 우리로 하여금 귀를 깊이 기울이게, 또 공들여 입을 열게, 그래서 마음과 마음을 좀더 가까워지게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나 스스로 말더듬이가 되어 있는 여행지에서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210~211쪽, 신해욱, <루앙프라방행 슬로우 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