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한 사람이 내게로 몸을 돌리고,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매혹적인 이야기를 좀 들려줘요, 하고 말했을 때, 일생 동안 오직 고요히 침묵만 하고 있던 수백 수천의 작은 종들이 비로소 내 안에서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의 은빛 투명한 나방들이 날갯짓을 시작했다. 은은한 울림이 밀려가고 밀려왔다. 격한 파도가 되어 부풀었다가 부드러운 거품처럼 아래로 꺼지기를 반복했다. 한 사람이 내게 말했다. 나에게 매혹적인 이야기를 좀 들려줘요. 내 안에서 영국식 뒷마당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며 오랜 물 위로 떠올랐다.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영국식 뒷마당으로 들어갔다.(배수아, <영국식 뒷마당> 중에서,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수록)
*
'나에게 매혹적인 이야기를 좀 들려줘요.'
그러자 그는 영국식 뒷마당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곳으로 들어간다. 자신 안에 죽지 않는 화려한 벽화로 아로새겨진, 그 자체로 자신 안에서 자신과 함께 살며, 자신의 피부이자 감각이 된 그곳으로.
우리에겐 모두 각자의 영국식 뒷마당이 있다. 배수아의 <영국식 뒷마당>은 매혹에 관한 매혹적인 이야기다. 나는 오래전에 그것에 대해 썼으나,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난 후 다시 한번 더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매혹에 대해서, 그것의 영향 아래 사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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