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토로하다

시월의숲 2022. 7. 14. 21:41

강물은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너는 네 스스로 강을 이뤄 흘러가야만 한다.

 

- 최승자, < 20년 후에, 지芝에게> 중에서(『즐거운 일기』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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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스스로 강을 이뤄 흘러가야만 한다고 일갈했지만, 나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이라는 사소하게 거대하고 무자비한 강물에 몸을 담근 채 흘러 흘러 지금까지 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었으나), 그러했기 때문에 그 강물이 나를 또 지금 이곳으로까지 인도한 것이다.

 

다음 사이트의 플래닛으로 시작하여 다음 블로그(이제는 곧 사라질)를 거쳐 티스토리로 오기까지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자리를 옮기는 것뿐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그것은 이 블로그도 마찬가지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블로그를 없애지 않고 계속 이어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들은 다 맞다. 하지만 그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토로(吐露)'일 것이다. 나는 토로할 곳이 필요했고, 누가 보든 안보든 일단 표현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길게 이어져 지금까지 온 것이다. 나는 급할 것이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나 역시 그 누구에게도 바라는 것이 없었다. 

 

무언가를 매듭짓고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새로운 공간에서 시작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앞서도 말했듯, 거대한 강물에 몸을 의탁한 채 흘러왔을 뿐이므로, 이것은 내게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는 흘러감의 연속이라고 해야 하리라. 강줄기는 바뀔 수 있으나 강물은 그저 흘러갈 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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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로 이전하면서 시스템 상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덧글이 다 사라졌다. 그 부분은 아쉽지만, 뭐 어떠랴.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내가 그동안 쌓아온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게 어디인가. 물론 그조차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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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의 한자어가 토할 토(吐)에 이슬 로(露)다. 하나의 한자어에 여러 가지 뜻이 있을 수 있지만,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이슬을 토하다'이다. 토로하다, 라는 말, 어딘가 시(詩)적인 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