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당신들 모두 같은 생각인가요?(영화, 『비상선언』)

시월의숲 2022. 8. 9. 22:43


이 영화는 테러리스트와 인질의 관계 혹은 테러의 이유 같은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테러 이후 남겨진 사람들(테러를 당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혹은 테러를 당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갈등과 서로 간의 이기심(이타심을 빙자한)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 이 영화는 테러리스트의 응징과 승객들을 구출하는 영웅 서사가 중심이 되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 테러를 통해 촉발되는 인간들의 이기심에 관한 영화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빈약하거나 때로는 너무 넘친다. 인간의 이기심과 희생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너무 단선적으로 그리고 있어서 빈약하고, 그것을 둘러싼 드라마가 너무 감정적―소위 신파적―이라서 과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매우 난감했다. 몰입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나를 영화 밖으로 끌어당겼던 것이다.

그 난감함을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말할 능력도 없거니와 그럴 기분도 들지 않는다. 사실 좀 혼란스럽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관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갖가지 물음표들로 가득 찼다. 인간에 대해서, 인간을 보는 시선의 단순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달까.

영화를 보는 내내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는데, 그중 가장 큰 의문은 왜 비행기 탑승객들 모두가 하나같이 그리도 쉽게 자신들의 희망을 접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아무리 모든 상황이 불확실하고 절망적이라고 해도 우리는 한 가닥 희망에 손을 내밀지 않는가? 물론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다. 하지만 인간들이 모두 이타적이고, 희생적이며, 숭고하기만 하다면 애초에 테러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선택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 불확실한 것인데도! 마치 초능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조정이라도 한 것처럼 모든 승객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장면은 내게 감동적이라기보다는 의아함을 안겨주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인간의 선의에 대한 희망적인 전망은 물론 감독의 시선일 것이고, 그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나 역시 희망적인 영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희망적인 메시지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희망적인 전망을 너무 희망적으로(혹은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다면, 그것은 좀 허황된 것이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에 국토부 장관 역의 전도연이 한 말이 생각난다. 의원으로 보이는 누군가 그녀에게 테러범의 테러 이유에 대한 가설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좀 뜸을 들이더니, 테러범이 왜 1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나 역시 모르겠다. 나는 테러범이 아니라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들을 모르겠다. 그들의 선택을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의 난감함은 거기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진정으로 이렇게 외치고 싶은 것이다.

당신들 모두 같은 생각인가요?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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