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K에 대해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들은 K를 아는가?
K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K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K역시 자신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아니, 자신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K는 그 어떤 말도 먼저 꺼내는 법이 없다. 누군가 무엇을 물어보면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을 할 뿐이고 결코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를 해도 K는 늘 혼자였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시간에 혼자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으며, 쉬는 시간에는 늘 자리에 없었고, 일과 시간에도 늘 혼자 건물의 빈 공간에서 어슬렁거렸다. 수시로 지각을 했으며,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도 일을 하는지 다른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업무의 기한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보고 기한을 한참 넘기기가 일쑤였다. 참지 못한 상사가 한 마디를 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다른 업무를 하느라 미처 못했다고 말했다. 무슨 업무? 이것은 보고하기까지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직도 못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도대체 이것 말고 다른 급한 업무가 무엇이길래? K는 급한 쪽지가 와서 그것을 먼저 처리하느라 못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바로 처리하겠다고 말하고는 이후로 감감무소식이다. 답답한 상사가 몇 번이고 독촉을 하면, K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건 나도 모르죠!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라고 말해, 상사를 비롯한 사무실 직원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K와 관련된 이야기는 무수히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K를 말해주는가? 그런 K가 돌연 의원면직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그런 생각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왜? 나는 몇 번이고 다시 물어보았으나 K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면직을 하고 난 이후의 삶을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K의 대답은 의외로 선선했다. 건강, 이라고 K는 말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그만두겠다고. 그리고 오늘이 K가 근무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늘 그렇듯 K가 아무런 말도 없이 가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K는 일상적인 퇴근을 하듯 조용히 사무실을 나가려고 했다. 나는 그런 K를 불렀고, 직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게 했고, 우리들은 어색하게, 눈도 마주친 적 없고, 말도 거의 해본 적이 없는 K에게 잘 가라고 인사했다(이조차 K에게는 부담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은 출입문까지 나와 배웅을 했다. K는 예의 그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말 마지막이 될 인사를 했다. 건강히 잘 지내요. 뭘하든 즐겁게 하길 바라요. 그때까지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K가 갑자기 한숨인지 탄식인지 모를 숨을 쉬더니(급기야는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건 내 착각이었을까?)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머뭇거렸다. 어서 말을 해봐! 그게 무슨 말이든!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나는 K의 마지막 말을 듣고 싶었지만, 옆에 있던 누군가, 잘 가요!라고 해맑게 인사하자, K는 단념하듯, 감정을 추스르듯, 혹은 정신을 차리듯 다시 특유의 무표정으로 돌아가 입을 다물고 돌아섰다. 나는 그런 K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뒷모습은 참으로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지만, 그 어느 것도 알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K를 이해할 수 있는가?
K를 생각하면 참으로 여러 가지 감정이 솟구쳤다가 가라앉는다. K를 이해하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 했을까? K가 다가오지 못하므로(않으므로) 내가 먼저 다가가야 했을까? K가 온몸으로 표현하는 거부의 몸짓을 그저 존중해 주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K를 배려한다고 한 행동들이 결국 K를 더욱 혼자만의 세계로 밀어 넣어버리는 결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이 모든 생각들이 그저 나만의 오지랖일 뿐일까? 어쩌면 K는 '나를 제발 좀 그냥 놔두시오!'라고 입버릇처럼 외치고 다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에 나오는 좀머 씨와 같은 영혼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물론 K는 그 말을 하기에는 너무나 사회적인 영역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를 제발 좀 그냥 놔두시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찌 알 수 있을까? 나는 K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K는 떠났고, 결국 그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불투명한 그림자로, 닿을 수 없는 미지로 우리들에게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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