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던 중이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람 두 어 명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 중 한 명이 내 곁에 오더니, 무슨 비영리단체에서 나왔다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매달 일정 금액의 후원을 권유했다. 그의 말투는 온화했고, 살짝 수줍은 듯했으나 조금의 강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기존에 후원하던 게 있어서 좀 망설였으나, 이내 신청서를 작성해서 그에게 주었다.
그는 내가 내민 후원신청서를 보고 제일 아래칸에 아이들에게 전해 줄 희망메시지를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했으나 아무런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파이팅이라고 적어준 사람도 있어요, 그가 말했다. 나는 좀 더 생각한 끝에, 그냥 후원만 할게요,라고 말했다.
내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얼마 되지 않는 돈을 후원하는 것이 무슨 커다란 선을 베푸는 것인 양, 힘을 내라, 열심히 살아라, 꿈을 가져라 등등의 말을 할 자격이 내게 있는가. 나는 다만 후원신청서를 작성하기 전의 내 망설임을 그들이 영원히 모르기만을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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