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놉(NOPE)

시월의숲 2023. 3. 4. 18:45

 

조던 필 감독의 <놉>을 보았다. 전작인 <겟아웃>과 <어스>를 인상 깊게 봤던지라 이번 영화도 기대가 되었다. <겟아웃>에서의 충격적이고 명징한 스토리에 비해 <어스>에서의 당혹스러움이 남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어떤 영화일지 궁금했다. 

 

공포와 미스터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이 영화는 그러니까 영화와 영화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영화였다. 처음에는 <어스>에서처럼 인간들의 교만과 어리석음(침팬지나 말을 길들여 볼거리를 선사하는 인간들)에 대한 우화인가 싶었는데 그보다는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게 더 맞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놉>은 영화라는 예술을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인간에 대한 경의를 드러낸다기보다는(물론 영화를 위해 보이지 않게 노력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 남매의 조상들 이야기를 들어보라!), 영화라는 볼거리의 스펙터클을 인간이 얼마나 맹목적으로 추구하는지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어느 평론가가 지적했듯, 그 비판을 위해 감독 자신이 스펙터클을 이용하는 것은 자기모순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마치 영화 속 구디(침팬지)에게서 살아남은 주프(스티븐 연)가 자신의 트라우마일지도 모를 그 사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돈벌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진정한 '관종'은 드러내지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일까? 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트라우마마저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는 말일까?)

 

어쨌거나 이 영화 또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흑인 감독이라는 정체성이 뚜렷이 드러나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알 수 없는 존재와의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한 주인공 남매의 마지막 모습에서 감독의 정체성과 자신감이 느껴진다. 또 그가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혹자들은 이 영화가 전작들에 비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오히려 반대다. 감독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어스> 때보다 더욱 명징하지 않은가! 물론 전작들에 비해 공포스러움은 훨씬 줄어들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