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너의 세상이 온통 나였으면 좋겠어(더 글로리 파트2)

시월의숲 2023. 3. 19. 19:26

<더 글로리> 시즌 2라기보다는, 총 16부작인 드라마를 8편씩 나눠서 보여주는 것이고, 이번에는 전편에 이어서 9편부터 16편까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파트 2라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결말을 향해가는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동은은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할 것인가? 복수의 풍경은 과연 어떤 모습일 것인가? 그리고 복수 이후의 풍경은 또 어떨 것인가.

 

격렬한 무언가가 터져 나오기를, 클라이맥스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하고 <더 글로리> 파트 2를 본다면 분명 얼마간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으니까. 나는 보는 내내 어서 통쾌한 피바람이 불기를 바랐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 난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톤이 있음을. 그것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뜨겁게 터져 나오는 용암 같은 것이 아니라 차갑게 얼어붙는 얼음 같은 것이어야 하고, 망나니 칼춤처럼 현란하고 과시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가 베였는지도 모르게 피를 흘리고 있는, 이미 자각했을 때는 모든 피를 쏟아버리고 난 이후임을 깨닫게 되는 예리한 송곳 같은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처음에 기대했던 격렬한 클라이맥스보다 뒤에 깨닫게 된 잔잔하고 우아한 복수의 여운을 조금 더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것은 감옥에 있는 박연진을 면회 간 동은이 '너의 세상이 온통 나였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것처럼, 최종 복수의 칼날이 오로지 박연진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당연한 말일수도 있지만, 다른 가해자들 역시 동은의 복수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물론 동은이 짠 판에 놀아난 것이었지만) 시기와 질투, 분노, 증오로 몰락하게 된다는 것이 내 성미에는 차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도 자신이 동은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몰락의 중심에는 그들 자신 혹은 가해자들끼리의 배신이 아니라 동은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들이 스스로 깨닫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들이 동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똑똑히 알아야만 하지 않는가? 그것이 그들의 몰락의 이유여야만 하지 않는가? 

 

나는 가해자들이 동은에게 한 짓도 참을 수 없지만, 동은의 엄마가 더 혐오스러웠다. 핏줄이라는 것!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드라마는 잘 보여준다. 그것은 남보다 더욱 징그럽고 벗어나기 힘든 굴레가 아닌가!(동은의 엄마뿐만 아니라 다른 의미에서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연진의 엄마를 보라!) 반면 동은을 도왔던 강현남과 그의 딸의 관계도 있으니, 얼마나 극과 극의 모녀관계인지. 동은의 엄마가 더욱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건 배우의 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올해의 연기상이 있다면 나는 동은의 엄마(박지아)에게 주겠다.

 

드라마의 마지막에 망나니의 칼춤이 여정에게서 동은에게로 넘어간다. 그렇다. 아직 우리는 주여정의 복수를 보지 못한 것이다. 복수는 그렇게 동은에게서 여정으로 이어진다. 이쯤 되면 이 드라마에서 복수란 여정과 동은이 추는 사랑의 춤이 아닐지? 하지만 드라마는 거기서 끝난다. 여정의 복수는 우리의 상상 속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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