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3. 3. 15. 21:38

*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받아줄 수 있는 게 가족이라지만, 네 마음 내킴을 언제까지고 받아줘야 하는 다른 가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니. 내 하나밖에 없는! 그 말의 폭력성을 진정 모르겠니. 편하다고 함부로 할 수 있겠니.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삼키고 또 삼켰다.(20230218)

 

 

*

주중에는 주중에 해야 할 일이 있고, 주말엔 주말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쉬는 날이라고 마냥 쉴 수는 없구나. 하지만 쉬는 날 하는 일이란, 기꺼이 해야 하는 것. 늘 그렇듯 휴일은 짧고 후유증은 길터이니.(20230219)

 

 

*

상담이라고 해야 할까, 뭐 그 비슷한 걸 했다. 말하자면 내가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입장이었다. 그가 말했다. 도저히 참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서 찾아왔어요. 내가 물었다. 무엇 때문에 힘든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어, 그러니까...

 

그는 내 예상과는 달리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잘 이야기하지 못했다. 참지 못할 정도로 힘든 이유, 이곳까지 스스로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나는 듣고 싶었는데. 그냥 힘들다고만 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생각하니 조금은 난감한 기분이 되었다. 시간이 필요한 걸까.

 

하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내 힘듦, 내 피곤, 내 슬픔과 내 고통 같은 것들. 오로지 나에게만, 나만이 느낄 수 있고 그리하여 나만이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 하지만 혹여 그런 것들에 관한 힘듦이라면 내가 어찌할 수 있을까. 나는 무력하고 무력할밖에.(20230221)

 

 

*

우리들은 술을 마셨고, 수많은 '위하여'를 외쳤다. 나는 문득 무엇을 그리도 위한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것은 염원일까. 아무런 염원도 없는 나는, 위하여를 위한다고 말해야 했을까.(20230224)

 

 

*

오로지 어떤 한 문장 때문에 그 책을 읽을 수도 있는 거겠지. 단지 제목만으로 어떤 책을 선택하게 되는 것처럼.(20230226)

 

 

*

나는 오늘도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고 말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나는 무슨 확신에 차서 그리도 신나게 떠들었을까?(20230228)

'입속의검은잎'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상들  (4) 2023.04.09
단상들  (0) 2023.03.30
단상들  (2) 2023.02.21
단상들  (6) 2023.02.05
단상들  (4) 2023.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