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3. 2. 2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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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나에게 열중해 있었다. 늘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제 마침내 한 번 인생의 한 토막을 살아보기를, 나에게서 나온 무엇인가를 세계 안에다 주기를,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게 되기를 열렬히 갈망했다.

 

- 헤르만 헤세

 

나 역시 늘 나에게 열중해 있었다. 늘 나 자신에게. 하지만 나는 나에게서 나온 무엇인가를 세계 안에다 주기를,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게 되기를 열렬히 갈망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나에게만, 늘 나 자신에게만 열중해 있었던 것이다.(202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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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말하기 전에 몇 번 더 생각해 보자고 하면서도, 나는 늘 무심결에 말을 내뱉고 후회를 하곤 한다.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더 나을 때가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는 중인데, 그 깨달음과 별개로 말은 쉬 멈춰지지 않는다.(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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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을 하고 싶어지는 것은 결국 내가 그것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과 같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옛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종종 빈 수레가 된다는 것.(20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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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창이 있는 풍경을 좋아하는 것 같다. 창을 통해 보는 풍경. 창 안쪽에서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 그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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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는다는 것,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닐까?(20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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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오늘이긴 싫다. 오늘은 오로지 오늘만을 위한 오늘이면 좋겠다. 오늘은 오늘을 살고, 내일은 내일을 살면 된다. 이 밤이 가는 게 아쉬운가? 나는 매일 밤이 아쉽다. 아쉽고 아쉬워서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오늘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아쉽다고 하면서 정작 내가 매일 밤 내가 하는 일이란, 아쉽다는 생각만 하는 것이다. 밤은 짧아, 아쉽구나 아쉬워. 그 생각만으로 나는 매일 밤을 보낸다. 오늘만을 위한 오늘이기를 바라지만 그 바람은 그저 바람일 뿐. 바람이 이루어지기 위해 내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오늘은 오로지 오늘만을...(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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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오지 않은 계절을 살고 싶었지. 입춘이 되기 무섭게 봄을 말하고, 어서 봄이 오기를 바랐으니까. 하지만 요즘 나는 좀 더 겨울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 겨울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하고. 왜 그런 마음이 드는 건지 알 수 없지만.(202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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