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3. 2. 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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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한심하게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를 둘러싼 것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조차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들을 나는 뭐가 그리 신나서 떠들어댔던 것일까?(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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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겠니. 지금은 적응하느라 힘들 때이니, 이전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몹시 그리울지도 모르지.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적응이 되면 그런 그리움은 점차 옅어지겠지. 옅어지고 옅어져 결국 생각조차 나지 않겠지. 다 그런 게 아니겠니.(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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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로부터도 그렇고, 나 자신도 내가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결코 친절한 게 아니었다. 진정한 친절함이란 마음속에 어떤 기대나 바람, 증오나 짜증 같은 것들이 섞여 있지 않아야 할터인데, 나는 오늘 속으로는 화를 내면서 겉으로는 친절하고자 무척이나 노력했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이 무척이나 슬펐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남들에게 해주는 건 없으면서 바라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 정도는 해주겠지, 하는. 내가 가장 증오해 마지않는 그런 생각을, 나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소한의 예의라는 명목으로.(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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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아무리 이해하려 해 봐도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들보다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더 많다고, 그렇게 이해하고 싶지만 사실 그게 잘 안된다.(202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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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오래전 내가 읽고 있던 책의 제목만 보고 당시 내 심리상태를 짐작하곤 했다. 그것은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는, 우연의 산물일 뿐이었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애써 그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아버지가 오해하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는데, 그것은 나만의 소심한 반항이었던 것이다.(202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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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말한다.

나의 기억과 너의 기억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내가 기억하는 것들을 너는 기억하지 못하고, 네가 기억하는 것들을 나는 기억하지 못하니, 우리들의 기억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나는 말한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애석하긴 하지만, 기억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겠니. 내 기억 속의 너와 네 기억 속의 내가 다르듯이. 우리들의 기억이 다 같을 필요는 없지 않겠니. 그 사실이 때로 슬플지라도 그저 슬퍼할밖에.(20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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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부터 눈이 소리소문도 없이 내린다. 사무실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느리고 부드러운 속도로 지상에 미끄러지듯 내려앉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무성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나는 두 시간 일찍 조퇴를 한다. 소복소복 내리는 눈길을 운전해서 집에 도착한다.

 

비록 두 시간 일찍 퇴근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힘이 세서, 하루 휴가를 낸 듯한 해방감을 느낀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어리둥절했는데, 갑자기 또 눈이라니. 눈이 내리는 바람에 살짝 포근한 느낌마저 든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해야지. 지금은 그저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수밖에.(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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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자 한 행동이, 결국 내 속물성을 확인하는 일이었다니.(202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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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스미스의 새 뮤직비디오가 나왔구나. 그런데 내가 알던 샘 스미스는 어디에? 이상하게도 조신한 샘 스미스일 때는 별 관심이 없다가 지금의 그를 보니 뭔가 자신을 찾은 것 같은 느낌에 관심이 더 생긴다. 그래,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아니겠니. 두 번째 인생은 없어.(20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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