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3. 5. 2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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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15번째 장편소설,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이 13일 일본에서 출판되었다고 한다.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니. 제목이 마음에 든다. <기시단장 죽이기> 이후 6년 만에 나온 장편이라니. 헌데 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무슨 내용일지 궁금하다.(20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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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발로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글로 하는 여행이다."

 

여수에 갔을 때 묵었던 호텔 복도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독서와 여행은 어디에서나 이루어진다.(202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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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 나는 왜 사진을 찍을 때마다 눈을 감는 걸까? 눈을 감으려고 한 게 아닌데 늘 찍힌 사진을 보면 눈을 감고 있다. 그래서 더 사진 찍는 일을 꺼려하는지도. 찍으려면 뒷모습을 찍어줘. 내가 의식하지 않는 내 뒷모습을. 나는 늘 그렇게 말하곤 하는 것이다.(202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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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정원은 잊게 만든다. 우리는 잊는다. 말과 우리 자신을. 세상으로부터의 근심과 고통을.

 

-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중에서

 

5월이 되었다. 나름 신경 쓰이는 업무를 하나 끝내고 나니 온몸과 마음이 지친다. 마치 격렬한 운동을 한 것처럼 몸이 아프다. 그렇게 5월을 맞이하는구나. 내게 필요한 것은 세상으로부터의 근심과 고통을 잊게 만드는 5월의 정원이 아닐까. 가자, 5월의 정원으로. 잊자, 잊어버리자.(20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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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다. 발목에 무리가 가도록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왼쪽 발목이 아픈 걸까? 가끔씩 몸의 특정 부위가 아플 때가 있다. 몸이 내게 보내는 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지는 순간이.(202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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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열어놓은 차창으로 아카시아 향기가 쉴 새 없이 들어온다.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퇴근하는 길은 행복하구나. 정신을 놓고 싶을 정도로. 바야흐로 아카시아의 계절.(20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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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을 길게 늘이는 게 쉬울까, 긴 글을 짧게 줄이는 게 쉬울까? 물론 둘 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20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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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의 동쪽이고 서쪽이며 남쪽이고 북쪽이었다,

나의 평일의 생활이자 일요일의 휴식이었고,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대화, 나의 노래였다

 

- W. H. 오든, 「장례식 블루스」 중에서

 

너는 나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걸까? 그것은 네가 세상에 없을 때만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종종 궁금하다. ‘내 동쪽이고 서쪽이며 남쪽이고 북쪽인 그’라는 존재가.(202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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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치, 『눈먼 부엉이』를 읽기 위해 이란으로 여행을 떠난 것처럼 보였다. 그 책은 비밀과 같았다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말했다. 깊이 매혹당했고, 아무도 알지 못했기에.

 

-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중에서

 

어떤 책을 읽기 위해 그 책과 연관된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 정말 멋진 일이 아닌가! 깊이 매혹당했고,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한. 그렇다면 그 책은 책이 지닌 것 이상을 가지게 되리라. 그리하여 그에게는 더욱 잊히지 않는 특별한 책이 될 것이다.(202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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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첫 번째로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밀크티를 주문했다. 옅은 보랏빛의 밀크티에는 크림이 살짝 올려져 있었다. 별 기대 없이 한 모금 마셨는데, 예상치 못한 향긋함과 부드러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만족감에 말이 많아졌던가.(20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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