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고리

오래된 것들

시월의숲 2024. 8. 3. 22:37

 

 

 

뜨거운 여름.
 
문을 지나는데 제비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어떠니? 눈으로 물었다. 연수를 마치고 오는 길에 고택이 있어 들른 것이다. 그곳의 주인인듯한 제비에게 인사를 하고 고택을 구경했다. 아직 피어있는 능소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천천히 고택을 구경하고 있으니 이 여름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모든 것들에 경외심이 들었다. 고택의 기와도, 나무도, 꽃들과 낮은 담들도 모두 뜨거운 태양을 묵묵히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인간인 나만이 덥다를 연발하며 그늘만 찾아다니지 않았던가?

 

나는 왠지 머쓱한 기분이 들어 툇마루에 잠시 앉았다. 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곳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그늘 또한. 자연과 더불어 고택은 그렇게 오래된 것이 되어간다. 나라는 존재 역시도. 다른 점이 있다면, 고택은 지금까지 오래되어 왔고, 앞으로도 오래된 것으로 존재하겠지만, 나는 그 고택의 툇마루에 잠시 앉았다가(혹은 앉기도 전에) 사라지는 먼지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치며, 고택을 나오는 길에 다시 제비를 올려다본다. 제비와 내가 다른 점이 무엇일까? 제비에게 묻는다면 성질을 낼 수도 있겠지만.

 

김선오 시인은 『미지를 위한 루바토』라는 산문집에 이렇게 썼다. 

 

'사물에 대해서 시를 쓰기 시작하는 순간 어떤 수줍음을 느끼게 된다. 그와 나 사이에 놓인 거리를 자각하는 순간 더이상 함부로 다가설 수 없고, 그로 인해 나의 존재가 멋쩍어진다.'

 

어디 시를 쓰는 순간뿐이랴. 그 '수줍음'은 그와 나 사이에 놓인 거리를 자각하는 모든 순간에 있다. 달리 말해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시를 쓰고 있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토성의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느낌  (0) 2024.09.28
密陽  (0) 2024.04.21
건물과 건물을 둘러싼 것들  (2) 2023.05.05
동백은 세 번 핀다고  (0) 2023.04.14
비밀의 문 안쪽을 향해 스쳐 지나가는  (0) 2023.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