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이 가기 전에 S가 말한 700년 된 은행나무를 보러 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말이 다가오면 오늘은 가야지, 내일은 가볼까 하다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곤 했다. 오늘도 역시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C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그저 생각만으로 그쳤을지도 모른다. C가 잠깐 들른다는 말에 나는 오늘 오후에 (나와의) 약속 - 계속 유예되기만 했던 - 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와 먼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C를 만나지 않기로 했다. C와의 일은 굳이 만나지 않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실용적인 문제였으므로, 조금이나마 생길지도 모를 죄책감은 저만치 밀어놓을 수 있었다.
차를 몰고 외곽도로로 삼십 분 정도 가다가, 구불구불한 산길을 이십 분 정도 갔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그 은행나무는 '700년이 훨씬 넘은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으나 댐의 건설로 물에 잠길 위치에 있어 노거수의 이식이 불가하여 그 자리에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인공섬을 만들고 그 자리에 수직으로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 7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는 이미 잎을 다 떨구었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도록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잎은 다 떨어졌더라도 커다란 나무줄기를 만져볼 수 있기를 바랐는데, 그리하여 700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가늠해 볼 수 있기를 -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 바랐는데, 그건 내 이기심이었던 것 같다. 인간에게는 나무가 여러모로 필요한 존재이지만, 나무의 입장에서는 가장 해로운 존재가 바로 인간일 것이므로. 그런데도 수몰당하게 두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칠백 년 넘게 산 은행나무에게 보이는 최소한의 양심인 걸까.
무려 칠백 년이라는 세월을 고스란히 살아낸 은행나무에게 경의를. 그 아득한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