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고리

건물과 건물을 둘러싼 것들

시월의숲 2023. 5. 5. 20:38

 

*

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물 안에서 안도 타다오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제임스 터렐관은 이번에도 보지 못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안도 타다오의 인기가 이렇게? 뭐랄까, 건축가의 전시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전시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더욱 좋았던 것은 건물 그 자체였다. 어쩌면 그곳의 주인은 전시관 안에 있는 작품들이 아니라 건물 그 자체, 그러니까 건물을 이루고 있는 돌과 건물을 둘러싼 풍경들에 있는 것은 아닌가? 그곳에 있던 나무들과 담쟁이넝쿨 같은 것들 말이다. 돌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건물과 수중 정원, 푸른 나무들의 어우러짐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아주 빨리 흘러갔다.

 

아, 그곳에 가면 잊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뮤지엄 산에서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자코메티의 조각상이 그것이다.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나는 흥분에 겨워 이렇게 적었다. 

 

거기엔 단 하나의 조각상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장 주네는 말한다.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를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 주게끔 하려는 것 같다'고. 나는 격렬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20220324)

 

이상하지. 그때는 장 주네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번에 가보니 너무나도 밝은 전시 공간 때문에 특유의 ‘고독’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웠다. 아니, 군중 속의 고독을 드러내기 위한 고도의 전략인 걸까? 조각상이 놓여있는 곳의 뒤편이 햇빛이 잘 들어오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조각상의 세세한 굴곡이랄까 명암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시간에만 그런 걸까? 아님 그게 최선이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조각상의 어두운 형태만 보고 온 느낌이 든다. 물론 그 느낌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202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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