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잠으로 도피하고 싶은 걸까, 잠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걸까?(20240901)
*
잠이 너무나 쏟아져 쓰러지듯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저녁이 되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풀벌레 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린다. 귀뚜라미일까? 구월은 잠과 풀벌레 소리로 시작된다.(20240901)
*
아파트에 귀뚜라미가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20240902)
*
저는 늘 적응하느라 애쓸 따름입니다. 늘 적응만 하다가 볼일을 다 보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기는 합니다만.(20240902)
*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당신의 마음이 편할 대로 하세요. 그는 몇 번이고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 편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거절이나 사양의 의미로 쓰일 수도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미 내가 말을 꺼낸 후에.(20240903)
*
코피가 나는 것은 얼마만인가. 두통과 코피는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피가 묻은 휴지를 신기한 듯 한참 바라보았다.(20240903)
*
무시에는 무시가 답. 쓸데없는 일에 상처받지 말자.(20240904)
*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습니다. 나의 결여가 무엇인지. 나에게는 없는, 치명적인 무언가를. 원래부터 없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한 걸까요?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언가 결핍된 것이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결핍으로 이루어진 인간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세상엔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 다들 저마다 다양한 결핍을 지니고 살아갈 테지요. 나라는 인간이 결여된 것들의 총체라면, 그걸 무슨 존재라 부를 수 있나요. 없는 것은 왜 있는 걸까요. 없는 것은 없어도 되는 걸까요. 이런 쓸데없는 망상이.(20240905)
*
올여름은 유난히 덥고 습하다. 그리고 길다. 오늘도 일 때문에 하루종일 야외를 돌아다녔는데 땀이 절로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로수와 숲은 예전의 울창한 녹음이 아니었다. 여전히 기세등등한 여름의 기운에도 불구하고 첩보작전하듯이 은밀하게 가을은 오고 있다. 무엇보다 아침저녁으로 내가 재채기를 한다는 건, 확실히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인 것이다.(20240909)
*
추천 트윗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티모시 샬라메의 영상이 뜨길래 마음에 들어요를 눌렀더니, 계속 그 영화 속 장면이 나오는 트윗이 뜬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다시 영화를 떠올리게 되었다. '여름날은 간다'라는 뜻일까? 영화 속 이탈리아의 여름 풍경도, 두 주인공들의 사랑도 모두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바로 엘리오의 개방적이고 편견 없는 부모들이었다. 그들의 존재가 있어 엘리오의 사랑은 비로소 사랑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아, 다시 돌아오지 않을, 뜨거웠던 여름날은 간다.(20240909)
*
가을이 오긴 오는 것 같은데, 여름이 도무지 가지를 않는다. 우리나라 사계절의 시기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정말 이제는 9월까지 여름이고 10월이 되어야만 겨우 초가을이라고 말할 수 있을듯하다. 뭐랄까... 좀 슬프네.(20240911)
*
고향이 같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처음 만나는 너와 내가. 그건 우리가 어렸을 때 갔던 식당(지금 사라졌다면 더욱)과 무수히 걸어 다녔던 거리와, 동네의 누군가를 안다는 것. 그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같은 거리를 걷고, 동네 아저씨 혹은 아주머니와 그들의 아이들을 안다는 것이, 이렇게 특별한 일이었나.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우리가. 내가 과거에 살았던 시공간 속에 너도 있었다는 것이. 과거는 무엇일까. 유년시절은 무엇일까. 그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길래, 이토록, 기분이.(20240912)
*
자다가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났는데, 다음 날 하루 종일 아파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했다. 그러더니 오늘은 왼쪽 발목과 발바닥까지 아프다. 통증이 전이되는 걸까. 추석 전에 이게 무슨 일인지. 원래도 돌아다니지 않지만, 순순히 집에만 있으라는 신호인가. 그럼에도 오늘의 집안일은 해야 한다.
쉬는 날엔 몸의 통증이 더욱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일을 할 때는 긴장을 해서인지 그럭저럭 티 나지 않게 걸어 다녔는데, 쉬는 날인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절뚝거리며 집안을 걸어 다닌다. 오롯이 몸과 내가 대면하는 시간. 나는 그 통증을 바라본다. 절뚝거리며.(20240914)
*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어요. 그가 문득 말을 중단하고 내게 물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외로웠습니까? 고통도 있었나요? 잘 모르겠어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어린 시절은 마치 잠과 같았어요.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모든 거울 속에서, 반투명한 유리창의 빛 속에서 보았답니다. 단지 그것이 잠과 같았을 뿐이죠.
- 배수아, 『속삭임 우묵한 정원』 중에서
저도 궁금한 것이 있어요. 당신의 어린 시절은 외롭지 않았습니까? 고통도 없었나요? 어린 시절이란 원래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까? 아니라고 말하는 당신은 행운아로군요. 외롭고 고통스럽다 못해 외로움이 고통이 되기도 하는 것이 어린 시절이 아닌가요?(2024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