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을 그 여자에 대하여

시월의숲 2024. 10. 2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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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은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자신이 아는 그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화자(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여자를 잘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그는 그 여자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곧 그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이 그 여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유예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끝은 마치 행성의 폭발처럼 눈부신 잔향을 남긴다. 어쩌면 결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으리라.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다른 결말은 생각조차 할 수 없으므로.
 
이 소설의 제목에 대해서 생각한다. '별의 시간'에 대해서. 이 소설에서 등장하지 않는 별은, 아마도 '북동부 여자'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별의 시간이란 바로 그녀의 시간이고, 그녀의 시간은 별의 시간처럼 시원(始原)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마치 별이 사라지듯 그녀도 사라진다. 나는 이 소설을 처음 읽는 순간, 책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이전에 같은 작가의 『달걀과 닭』을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사뭇 놀랐다. 그만큼 이 소설은 한 번 읽으면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그 마력은 아마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 여자' 때문임은 분명하다. 순수하다고 하기에도, 바보 같다 하기에도, 어리석다 하기에도 부족한, 인간 그 자체, 혹은 사물 그 자체,  '최악에도 최고에도 이르지 않은 채 비인간적인 중간 상태에서 살고' 있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며 그저 살아'가는 그 여자 때문임을. 소설을 다 읽고 생각했다. 산다는 것은 사치요, 처절한 일이라는 것을. 또한 그것은 우연의 음악과도 같이 즉흥적이라는 것을.
 
그는 마지막에 묻는다. 
 
"빛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담배를 피워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맙소사, 방금 기억났다. 우리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 하지만 나도?!
   지금이 딸기 철이라는 걸 잊어버리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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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볼로냐 샌드위치 대신 근사한 저녁을 먹기 위해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몸을 파는 여자들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팔 수 있는 몸조차 갖지 못했다. 아무도 원하지 않아서 아직 처녀인, 무해한 여자, 아무도 그녀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21쪽)
 
그 북동부 여자와 같은 여자들은 빈민가의 공동주택에, 여럿이 함께 쓰는 방에, 녹초가 될 때까지 일하는 상점 계산대 뒤편에 무수히 흩어져 있다. 그들은 자신이 너무도 쉽게 대체될 수 있음을, 또한 차라리 지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런 삶에 저항하는 여자들은 거의 없다. 내가 아는 한 그들은 불평이란 걸 하지 않는데, 그건 '누구'에게 불평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누구'는 존재할까?(22쪽)
 
내가 이야기하려는 여자는 너무 멍청해서 가끔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낸다. 하지만 아무도 그 미소에 답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기 때문이다.(25쪽)
 
이제 나는 북동부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내 의중은 이렇다: 그녀는 떠돌이 개처럼 오직 그녀 자신에 의해서만 인도되었다. 나 역시 이런저런 실패 끝에 나 자신으로 축소되었으나, 적어도 나는 세상과 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29쪽)
 
그 여자에 대해 말하자면, 그녀는 최악에도 최고에도 이르지 않은 채 비인간적인 중간 상태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며 그저 살아간다. 사실 - 왜 그 이상의 것을 해야 하는가? 그녀의 존재는 빈약하다.(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