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룸 넥스트 도어》를 보았다. 내가 사는 곳의 메가박스에서는 오늘 고작 1개 상영관에서 단 두 번 상영을 했다. 놓쳤으면 아마 한참 뒤에 봤거나, 보지 못하고 잊어버렸을 것이다. 영화관은 나를 포함해서 단 두 명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를 본다. 오래전에 그의 《그녀에게》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후에 《나쁜 교육》을 봤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어렸을 적 트라우마로 고통받던 남자가 자신을 고통에 빠트린 사람을 찾아가 복수를 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암튼 영화가 독특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무척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 이번 영화는 감독의 첫 번째 영어 영화라고 하는데, 배우가 무려 틸다 스윈튼과 줄리앤 무어라니, 안 볼 재간이 없지 않은가!
영화는 인간의 존엄사(안락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죽는 방법은 무엇인가. 병이 자신을 망치기 전에 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런 무거운 주제에 감독은 안락사라는 인간의 선택을 분명히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시종일관 죽음과 대비되는 삶의 화려한 감각(색채)들을 스크린 가득 펼쳐놓으며, 문학에 관한, 음악에 관한, 예술에 관한 존재감을 드러내 보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죽음이란 것도 인간이 가진 하나의 존엄한 선택일 수 있음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것이 삶의 비관과 고통에 삼켜지지 않고 온전히 '나'라는 존재를 지키다 가는 길일 수 있음을.
우리는 모두 죽지 않을 것처럼 살지만, 죽음에 다다를수록 죽을 것처럼 공포에 떨게 된다. 머리로는 인간은 유한한 존재요, 죽음을 항시 생각하며 대비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우리들은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상상한다. 문학으로, 미술로, 음악으로, 몸짓으로, 영화로. 그러니까 소위 예술이라는 것으로 우리는 죽음이라는 미지의 현상을 힘껏 상상해 보는 것이다. 이 영화 또한 그에 대한 하나의 아름다운 성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 내게, '내가 죽음을 선택할 때 당신이 내 옆 방에 있어주기'를 부탁한다면,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내가 그런 부탁을 한다면 과연 그 대상은 누구일까. 아니, 나는 그런 부탁을 할 용기가 있을까? 영화 속에서 그런 부탁을 하는 마사(틸다 스윈튼)도 놀랍지만, 그 부탁을 받아들인 잉그리드(줄리앤 무어)가 어쩌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가득한 그녀였지만, 마사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고 죽음을 직시할 수 있었는지도.
"눈이 내린다. 모든 산 자와 죽은 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