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오직 바람이 말하게 하라

시월의숲 2025. 1. 27. 17:49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직 바람이 말하게 하라. 에즈라 파운드는 《칸토스》에서 그렇게 썼다'라고 배수아는 《바우키스의 말》에 썼다. 나는 그 말을 다시 쓴다. 내가 무언가를 읽고 쓴 모든 것들은 그것을 쓴 자의 말을 다시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그가 쓴 말로 말한다. 그가 쓴 말로 내 말을 대신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느낀다. 그것에 희열을 느낀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의 말에 담긴 아름다움을 절반도 채 이해하지 못한 채 쓰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직 그가 말하게 하라' 여기서 '그'는 내가 읽은 배수아 혹은 페소아다. 혹은 수많은 다른 이름들이다.  아, 오해하면 안 된다. 내가 말한 아름다움은 그저 통상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포함한 모든 것이다. 모든 감정이다. 모든 심연과 어둠과 공기와 푸른 숲과 하늘이다. 절망이요, 고통이자 차갑고 시린 바람이다. 모든 말이자 말 이전의 감정이다. 그가 느끼고 표현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다. 마치 장 주네가 말한 시궁창에서 피는 꽃과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