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통증은 나를 고립시킨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몸이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고문의 순간들 속에 나는 갇힌다. 통증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으로부터, 아프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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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으로 인한 고립은, 통증과 내가 온전히 마주하게 되는 시간 속에서, 그러니까 집에서 쉬고자 하는 순간에 더욱 촉발된다. 아픔을 낫게 하기 위해 쉬는 순간, 아픔은 더 활개를 치며 다가오는 것이다. 그 순간은 나와 고통이 오롯이 마주하게 되는, 말하자면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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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머리가 아프니 잠이 온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다시 머리가 아프고, 그러면 다시 잠을 자고. 어제는 하루종일 그랬다. 그렇듯 맥없이 몸이 무겁고 쳐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중력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가중되어 내 몸에 작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두통도 함께 왔다. 두통이 몸을 무겁게 만드는 원인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자면서도 맥락 없는 꿈이 오락가락 이어졌다.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천만다행으로 오늘은 어제보다는 좀 나은 정신으로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연자실한 기분이었다. 몸과 정신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묘한 상태로 TV를 틀었다. 채널을 돌리다가 EBS 세계테마기행 튀르키예 편을 하길래 멍하니 보았다. 음식 블로거(?)라는 사람이 튀르키예의 몇몇 지방의 음식을 소개해 주었다. 아티초크라는 채소가 나왔는데 생긴 것도 신기했지만 도무지 무슨 맛일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 아티초크라는 이름이 생소하지 않아서 내가 이걸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하다가 이와 같은 이름을 가진 출판사가 있다는 걸 떠올렸다. 나는 그 출판사에서 펴 낸 엘제 라스커 쉴러의 시집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신기해했다. 신기해하다니! 나는 그 기분을 느낀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어제만 해도 나는 아픔, 고통 따위의 단어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제는 커피를 마실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그래도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몸이 다 낫지 않아서인지 연하게 내렸는데도 커피 맛이 유난히 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의 쓴 맛과 신기해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내가 조금씩 아프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로 다시금 들어가고 있다는 징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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