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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작가가 작년부터 한국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다시 본다, 고전2〉 시리즈를 읽고 있다. 한겨울에 곶감 빼먹듯, 아까워서 한 편씩,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고 있다.(202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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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는데 백로인지 왜가리인지 모를 새 한 마리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내 머리 위로 날아가다가 소나무 위에 앉았다. 하지만 아무리 바라보아도 새는 보이지 않는다. 새는 나를 보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 새가 내게 가던 길 가라고 말하는 것 같아 머쓱한 기분으로 다시 걸었다.(202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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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의 글에는 치명적인 질병이 자주 등장하여 주인공의 정신세계와 언어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아마도 그 자신이 어린 시절 전쟁을 목격했고 결핵과 늑막염을 앓으며 생명을 잃을 뻔했던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질병 이외에도 죽음의 공포와 환각, 그에 따른 부정적이고 암울한 세계관, 세계 자체에 대한 극단적 비난과 단죄, 특히 고국 오스트리아를 향한 날카로운 독설은 베른하르트 문학의 특징이다. 그러나 또한 비관적인 과장 속에는 유머가 숨겨져 있으며 변주와 반복을 거듭하는 문장은 베른하르트 언어만의 음악성을 느끼게 해 주는데, 이 점을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그의 독자가 되지 않기란 힘든 일이었다고 나는 고백한다.(배수아, 한국일보 연재 중에서)
'변주와 반복을 거듭하는 베른하르트 언어만의 음악성'. 그게 없었다면 그토록 길고, 문단이라는 것조차 존재하지 않는, 책 한 권이 그저 한 인간의 독백인 그의 소설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필립 글라스의 음악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202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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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일들이 현실 세계에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소설이나 영화가 현실 세계에 숨겨진(추악한) 이면이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바탕이 되는 '현실'이라는 게 이토록 노골적으로, 망상과 광신의 얼굴로, 폭력으로 드러나다니.(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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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편에게 이익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의라고 라디오는 외친다. 이롭지 않으면 옳은 게 아니다. 이익을 해치는 자에게는 살인, 약탈, 방화 등 뭐든지 저질러도 된다. 범죄자의 논리이다. 과거 로마의 신흥 부유층은 가난한 자의 부채를 탕감해 주려는 귀족 카피톨리누스를 반역자로 몰아 벼랑에서 떨어뜨려 죽였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러한 범죄는 자기 보호란 명분하에 항상 있어왔다. 그래도 과거의 그들은 남몰래 부끄러워하며 범죄 행위를 숨기고자 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는 대신 공공연히 자랑스러워한다. 이것은 페스트다. 우리 모두는 친구건 적이건 할 것 없이 모두 감염되었다. 우리의 영혼은 검은 종기로 뒤덮였다."
- 외덴 폰 호르바트, 《신 없는 청년》 중에서
악은 왜 이리도 서로 닮았는가. 선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를 의심받고 그리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면, 악은 증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드러내며, 결코 사라지지 않고, 노골적이며, 무엇보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악인 걸까. '이것은 페스트다... 우리 영혼은 검은 종기로 뒤덮였다'라는 문장이 쉬 잊히지 않는다. 부서진 잔해와 붉은 피가 잊히지 않는다. 이 어리석음과 비뚤어진 신념과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이면의 손익계산과 그에 따른 발악이... 이 부끄러움은 도대체 누구의 몫이란 말인가?(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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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과 오이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밥 대신 당근과 오이를 잔뜩 사서 먹어야지 하고. 그런데 결국 생각만 하고 말았다. 엉뚱하게도 당근 오이를 사고 싶은 마음이 언제까지 가는지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사러 가기 귀찮다는 말이겠지. 이상하게도 인터넷으로 야채를 사야겠다는 생각은 왜 들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202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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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2030 남자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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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써놓은 일기를 읽는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신기할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때의 심정, 그 기분. 틀린 맞춤법과 어색한 문장과 무엇보다도 과하게 진지하고 순진했던 태도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고. 없애버릴까 싶지만 그건 그대로 나만의 생각이었는 걸 하고 되뇌게 되는. 지금도 별반 달라진 건 없지만. 그래서 더욱 내가 나를 안쓰러워하게 되는, 뭐 그런.(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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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 가족들과 통화를 하면 왜 슬퍼지는지. 왜 끝내 슬퍼지고야 마는지.(20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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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본 후 배수아의 단편 《바우키스의 말》이 떠올랐다. 영화는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의 이야기가, 소설은 필레몬과 바우키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둘은 물론 다른 이야기지만, 어쩐지 둘 다 마지막 순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20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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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와 가사가 있는 음악이 아니라,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 딸그락거리는 소리, 옷을 스치는 소리, 입에서 나오는 무정형의 소리, 웅성거리는 소리, 핀이 떨어지는 소리, 눈과 비가 오는 소리, 사과 깎는 소리... 의미를 가지지 않는, 그저 소리일 뿐인 소리들이 더 편안할 때가 있다.(202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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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가는 오늘로써 끝이다(벌써?). 내일부터는 설명절이라고 하는 업무에 돌입해야 한다. 향후의 업무량이나 강도로 봤을 때, (오늘을 포함한) 삼 일이라는 충전 시간은 너무나도 짧은 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야지. 오늘의 달콤 씁쓸한, 연휴의 마지막 밤을 즐기자.(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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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생전 처음으로 립밤을 선물해 드렸다. 카페에 갔는데 립밤과 핸드크림 같은 것을 팔고 있길래 내 것도 사고 아버지 것도 함께 산 것이었다. 아버지는 립밤을 바르시더니 금방 없어질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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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설 연휴는 어제로써 끝난 것이다. 오늘 쉬었다고 해서 설 연휴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업무 끝이라는 말.(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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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세계는 온갖 침묵들과 도약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자신들을 살찌우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들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
- 장 그르니에, 《섬》 중에서
가만히 엎드려 있는 짐승으로서의 나를 위하여.(2025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