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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바꿨는데, 전에 쓰던 것과 비슷한 디자인을 골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관심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정말 다행이다, 생각하면서도 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거나 왼쪽 안경알의 도수를 높여서 약간 어지럽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겠지.(20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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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겨울인데 왜 이렇게 포근하냐고 투덜댔는데, 요즘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칼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추위도 몰아서 오는구나.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님 그냥 그런 건지.(202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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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떠오르는 것들과 떠올리려 애쓰는 것들 사이에서.(202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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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뭐 먹을 게 있나 싶어 냉장고를 열였더니 설날에 만든 부침개가 남아 있었다. 문득 아직도 응달진 곳에 남아 있는 눈의 잔해가 떠올랐다. 거짓말처럼 남아 있는 그것.(202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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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이소라의 〈쉼〉을 듣는다. 이소라의 1집은 말할 것도 없고, 2집 역시 만만치 않게 좋다. 2집의 첫 번째 곡인 〈쉼〉을 처음 들었을 때의 그 묘한 나른함을 잊을 수 없다. 《아비정전》을 아직 보지 못했으니, 나중에 영화를 보게 된다면 나는 이소라의 노래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202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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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잘 버티나 했다. 추위가 몰아닥쳤는데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잘 넘어가나 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놀릴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감기가 들이닥쳤다. 이 통과의례를 그냥 지나칠 리 없지. 암, 그렇고 말고.
감기란 참 신기하다. 그것은 어느 순간 갑작스레 걸리는 것이 아니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그것은 내 몸 안에 잠복해 있다가, 촉수를 세우고 전복할 기회를 엿본다. 물론 같은 맥락은 아니겠지만, 감기에 걸리면 나는 늘 기형도의 〈정거장에서의 충고〉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내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약을 한 알 먹었더니 정신이 몽롱하다. 근육이 이완되고 몸이 나른해진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그렇다는 것이다.(202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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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대표적인 실수 두 가지는 자신은 선하다는 생각과 다른 존재를 사랑한다는 믿음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프루스트의 문장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그 무엇도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고(선하다니!), 다른 존재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니까(사랑이라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기를 꺼려한다는 걸. 프루스트의 말대로라면 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일까?(202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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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 때문일까.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는 듯하다가도 별안간 또렷하게 맑아진다. 마치 안경을 쓸 때의 명징함과 벗을 때의 흐릿함을 오가듯. 반복되는 오락가락 때문에 어지럽기까지 하다. 도저히 일에 집중이 안되어 조퇴를 했다. 병원에 갈까 생각했지만 관뒀다. 오로지 집을 간절히 바랐으므로.(202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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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트면 립밤을 발라야 하는데, 자꾸만 손으로 뜯어서 상처를 만든다. 거울을 보니 맞아서 입술 터진 사람처럼 보인다.(202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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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듣지도 대답하지도 않는 당신, 이곳에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인 당신에게. - 피에르 베르제,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중에서
아무런 조짐도, 어떤 예감도 없이, 문득, 피에르 베르제가 자신의 죽은 연인에게 쓴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가 떠올랐다. 내가 그 책을 왜 읽게 되었을까? 무엇이 나를 그 책으로 인도했을까? 그리고 갑자기 왜 그 책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을까?
내가 그 책을 읽은 것은 아마도 동성 연인이 바라본 이브 생 로랑이라는 인물에 대한 흥미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제목에 쓰여있는 '나의'라는 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이 주는 모종의 혹은 노골적인 은밀함이 나를 그 책으로 이끈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당신! 나의 그대여!(2025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