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5. 2. 2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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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은 진은영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의 해설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 진은영은 그런 것을 가졌다'라고.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 이라는 문장은 얼마나 아름다운지.(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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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겠지만,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온갖 망상과 비극적이고 우울한 생각들이 온몸과 마음을 지배한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듯. 그것이 전혀 치명적이지 않은, 흔하디 흔한 감기 같은 것일지라도. 하지만 아프지 않을 수는 없으니, 몸이 아플 때 정신이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20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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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날 때 그날의 피로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어제 쌓였던, 하지만 잠으로는 풀리지 않은 피로일 것이다. 일찍 자는 것이 피로를 푸는 방법일 수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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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으로 약속은 당일에 잡지는 말자. 최소한 하루 전에는 미리 말을 해주자. 당일에 아무런 약속이 없다고 해도, 어떤 이들에게는(적어도 나에게는) 약속을 수락할만한 다짐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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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술은 너무 빨리 마시면 안 된다.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모임과는 별개로 혼자 마시는 술의 재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술과는 잘 맞지 않는 듯하다. 먹은 것을 다 게워 내서 속이 허한데도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겠다.(202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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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만났다고 술을 마시고, 헤어진다고 술을 마신다. 나는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인간사의 보이지 않는 규율 혹은 예의, 나아가 정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우리가 같이 일했던 시간이 있는데, 그냥 보낼 수 있나!" 

 

그런데 모임에 가보면(가기 전에 느껴지는 분위기도), 이 모든 절차들이 어떤 의무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속으로는 그냥 가볍게 잘 가라는 인사 한 마디면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래도 그건 아니지,라며 손사래를 친다. 나는 아직도 뭐가 맞는 잘 모르겠다.(202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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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누군가 벚꽃을 보러 오키나와에 간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 추운 날 벚꽃이라는 단어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들려서 큰 소리로 뭐라고요? 벚꽃?이라고 외치고 말았다.(202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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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놓고 읽지 않으면 같은 책을 두 권 사놓고도 모르게 된다. 오늘 책장을 무심히 들여다보는데 같은 책이 두 권이나 있어서 깜짝 놀랐다. 하하.(20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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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앙인은 아니지만, 요즘 일부 기독교인들을 보면 소위 '신의 뜻'을 오독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은 무섭고 위협적이기까지 하다.(20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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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을 하나 먹었는데 달아서 정신이 번쩍 든다. 단 게 먹고 싶어서 먹었는데 너무 달다고 타박하고 싶어지면 어쩌자는 건지. 암튼 입가심으로 당근을 먹었다. 늦은 간식을 먹어서 밥 생각이 없었는데, 말하자면 저녁 식사인 셈. 오래전에 부산에서 딸기 탕후루를 처음 먹고, 쌓였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진 경험 이후로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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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답다 혹은 여자답다는 말을 싫어하면서도, 무심결에 상대방을 칭찬한다는 명목으로 그런 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나 스스로가 그런 고정관념과 편견의 피해자(?)이면서도, 나 스스로가 그런 고정관념과 편견의 가해가자 되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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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 앞에서 막힘 없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걸까.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일까? 나이를 먹어도 소위 '무대 울렁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익숙해지지 않는다. 만남과 헤어짐이 늘 낯선 것처럼.(202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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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미키 17〉을 봐야지. 〈컴플리트 언노운〉도 보고 싶은데. 〈서브스턴스〉를 봐야 할까? 무려 〈퇴마록〉이라니! 아, 이소라 콘서트를 한다고? 라디오를 백만 년 만에 듣는 거 같은데... 안영미의 두 시의 데이트라고? 뭐, 이런저런 생각들을.(202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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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잠시 걸었는데 햇살이 따뜻해서 외투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2월도 이제 하루 남았구나.(20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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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건, 외부로 향했던 시선을 조금씩 내부로 거둬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몸놀림이 한껏 조심스러워지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미래보다는 과거를 들여다보게 되고, 격렬했던 감정의 정체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뭐 그런. 그렇다면 나이 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나이를 먹게 되겠지만.(20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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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한 번 늘어난 카드값은 줄어들 줄 모르는구나.(20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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