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탕진하는 삶

시월의숲 2025. 2. 19. 23:10

문득

 

읽지 않은 책들로 둘러싸인 방에 홀로 앉아서, 핸드폰이나 유튜브를 몇 시간씩 보고 있으니 갑자기 탕진(蕩盡)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탕진의 사전적 의미는 '모두 써서 없애다'라는 뜻인데, 써서 없애는 것에는 재물 따위뿐만 아니라 시간, 힘, 정열 등을 '헛되이' 쓰는 것도 해당된다고 인터넷 국어사전에 나와 있었다. 나는 재물이나 시간, 힘, 정열이라는 단어보다도 '헛되이'라는 말에 눈길이 갔다. 그 말이 나를 건드렸다. 나는 지금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읽지 못한 책은 끝내 읽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일까.

 

나는 언젠가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다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 말을 고쳐서, 지금의 나는 내가 읽은 책이 아니라 읽지 않은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궤변일까. 전자는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자는 내가 읽지 못한 책들에 대한 자책과 후회로 점철된 변명이 아닌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또 이런 말도 안다. 황정은이 그의 소설에서 한 말.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은 존재라는 것. 허망한 것이 인생의 본질이라고.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니 이 헛된 세상에서 헛되이 사는 것은 어쩌면 제대로 살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그러므로 수시로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불안과 두려움에 너무 일일이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나에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