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다. 초등학교 동창 누구라고 했다. 이름이 익숙하긴 한데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동창회 모임을 하는데 나오라는 이야기였다. 밴드로 붙여 놓은 것처럼 초등학교 때의 기억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니. 다 모르는 사람들일 뿐인데. 나는 그와의 대화가 점차 두려워졌다. 다른 동창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설마 그럴 리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아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과거 속의 나와 굳이 대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202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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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니. 다 모르는 사람들일 뿐인데.
오늘도 동창회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며 누구누구라고 전화가 왔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과거 초등학교 시절의 동창과 반말을 하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내키지 않아 하자 그는 말했다.
"원래 처음은 다 그래. 우리가 서로 모르더라도 일단 나와서 만나보면 점차 기억이 날 거야. 나이가 들어보니 동창들하고의 만남이 참 좋더라고."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만나서야 겨우 기억나는(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를) 사람과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내가 왜 미안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미안하다고, 너에게도,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내 성정이 그런 걸 어떡하겠니. 그나저나 내가 벌써 동창회에 나갈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하는 걸까.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경악스럽기도 하다. 우리가 가진 기억은 다 다르고, 내 유년시절이란 단지 몇 개의 파편처럼 흩어져 있을 뿐인데. 우리가 만나 서로의 기억을 서로 맞춰보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게 나이가 든다는 뜻일까.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자꾸만 과거를 들춰보게 되는 걸까.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일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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