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경 주연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개봉할 때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했다. 내가 사는 곳의 영화관에서는 개봉을 하지 않았거나 해도 아주 극소수의 개봉관에서만 했을 것이다(대부분 내가 보고 싶어 한 영화들은 그랬다). 물론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거나 발품을 팔았다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게으르고 게을러서, 보고 싶은데 개봉하는 곳이 별로 없구나 하면서 무심히 넘겼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엔 극장 개봉을 놓치더라도 볼 수 있는 루트가 아주 많으므로, 단지 시기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시기의 문제에 나는 늘 관대하다.
그리하여 이번에 넷플릭스에 올라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이 영화는 2022년에 개봉했다. 지금으로 치면 3년이나 전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겠는데, 어쩐지 그 기간은 꽤 오래 전인 것 같기도 하고, 불과 몇 달 전인 것도 같다. 시간관념이 혼란스러웠던 것처럼 이 영화 또한 혼란 그 자체였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쉴 틈 없이 재밌고, 가슴이 따뜻해지고, 끝내 뭉클해지는 영화였던 것이다.
다정함이 승리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한 말이었던가? 암튼 이 영화는 다정함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무의미 즉 부질없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극 중 에블린의 딸 조이(조부 투바키)가 수시로 내뱉는, 하찮다, 부질없다는 말을 들을 때면 황정은의 소설이 생각났다. 그는 《계속해보겠습니다》에 이렇게 썼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이 문장은 완벽히 이 영화에 대한 것이 아닌가? 다만 이 영화는 그 세계를 더욱 확장하여,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의 가능성이 다른 우주의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모든 다중 우주 속의 나는 내가 지금 여기서 이루지 못한 가능성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 그리하여 이 영화는, 그 모든 우주 속의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어루만지는 이야기이라는 것. 영화를 다 보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지금 여기서 조금 덜 외로워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이 영화는 가족과 사랑, 다정함에 대한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편지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