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미키 17

시월의숲 2025. 3. 1. 23:52

 

《미키 17》을 봤다. 평소 텅 빈 영화관에 오늘은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지금까지 영화관이 유지되고 있는 게 기적일 정도의 동네에 살고 있다) 그만큼 봉준호 감독의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재미있었다. 이전 영화였던 《기생충》과 같은 둔중하고 혼란스러운 충격파는 없었지만, 《옥자》나 《설국열차》가 떠오르면서, 그와는 미묘하게 다른, 이 영화만의 개성과 재미가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과 후에, 소위 영화평론가들의 별점과 한 줄 평을 읽는다. 당연하게도 영화를 보기 전에 보는 평은, 그 영화에 대한 기대랄까, 대략적인 느낌을 알 수 있다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읽는 평은 내 생각과 그들의 말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씨네 21에 올라온 전문가 평 중에 '어느덧 그의 나이가 느껴지는 시점'이라는 평은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자본주의 파시즘에 반하는 존재 방식으로서의 사랑을 논하는, 생명력 가득한 SF'라는 평은 마음에 들었다. 그중 가장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가까이서 보면 범작, 멀리서 보면 수작'이라는 평이었다. 어쩌면 그 말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미키 17》은 인간의 복제와 관련된 소재를 가지고 죽음, 노동, 자본주의, 파시즘, 독재, 침략과 폭력, 휴머니즘, 광기, 사랑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나는 죽음이라는 소재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주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한 인간의 반복적인 죽음과 태어남에 대하여. 극 중 많은 사람들이 미키에게 죽는 순간의 느낌이 어떠냐고 궁금해하는 것처럼. 영화는 그에 대해 지겹다는 투로 가볍게 응대하고 말지만(결국 그것은 끔찍하고 두렵고 생각하기 싫다는 말로 표현되긴 하지만), 어찌 알 수 있을까, 우리는 미키가 아닌데.

 

'가까이서 보면 범작, 멀리서 보면 수작'이라는 평이 왜 내 시선을 사로잡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영화는 '한' 인간의 반복적인 죽음과 태어남(프린팅)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저 극한 직업이라는 말로 희화화될 뿐, 그에 대한 성찰로는 좀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죽는 순간의 느낌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인간(을 둘러싼 사회)을 다루고자 했다는 점에서 수작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국 실패라는 것을 - 왜냐하면 실제 우리는 미키가 될 수 없으므로(완벽히 죽었다 살아난 사람은 없으므로) - 그래서 미키가 내뱉는 말은 예상 가능하다는 점에서 범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인간이란, 뜻하지 않은 희생과 예측불가능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거대한 폭압과 불합리를 타파할 수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결말은 좋았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압권은 눈보라 치는 설원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크리퍼들의 궐기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문제는 늘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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