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버닝

시월의숲 2025. 4. 8. 23:18

 

 

"종수씨는 무슨 소설을 쓰세요? 이런 거 물어도 되나?"

"저는 아직까지 무슨 소설을 써야 될지 모르겠어요."

"왜요?"

"저한텐 세상이 수수께끼 같아요."

 

- 이창동 감독, 《버닝》중에서

 

 

*

종수(유아인)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그는 알바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다가 우연히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았던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종수는 해미로부터 자신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집에 있는 고양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벤(스티븐 연)이라는 수수께끼의 남자를 종수에게 소개해 주며 몇 차례 술자리를 함께 한다. 벤의 번드르르한 집과 종수의 낡은 집에서. 술자리에서 종수는 벤의 은밀한 취미를 듣게 된다. 그는 두 달에 한 번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골라 태워버린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종수의 집에 해미와 함께 온 것도 실은 그 취미를 위한 사전답사를 위한 것이었다고. 그러던 중 해미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끊긴다. 전화도 받지 않고, 원룸도 어질러진 흔적 없이 말끔히 치워진 채로 비워져 있다. 해미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벤의 은밀한 취미가 신경이 쓰인 종수는 자신의 집 근처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돌아다닌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해미의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해미는 말이 없고, 알 수 없는 소리만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다 뚝 끊긴다. 도대체 해미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녀는 무사한 걸까? 혼란스러운 종수는 벤에게 의심을 품지만 그것은 단지 의심일 뿐이다. 사라지기 전 해미가 말했다. 자신은 어렸을 때 동네에 있던 우물에 빠진 적이 있다고. 우물 속에서 동그랗게 보이던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던 적이 있다고. 하지만 그 동네에 정말 우물이 있었을까? 평소 이야기를 잘 지어내던 해미의 말은 모두 진실일까? 동네 이장님의 기억에도, 해미의 엄마와 언니의 기억에도 우물은 없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자신을 떠나간 엄마는 우물이 있었다고 했다. 동네에 마른 우물이 하나 있었다고.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누구의 기억이 정확한 걸까? 해미가 아프리카에 다녀올 동안 봐달라며 부탁한 고양이를 종수는 본 적이 없다. 그 고양이는 워낙 낯선 사람을 경계하여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미가 말했다. 하지만 해미의 집에는 고양이 사료가 있었고, 고양이의 배설물이 놓인 상자가 있었다. 고양이를 본 적은 없지만 고양이가 그 원룸에 있다는 생각으로(당연하지 않은가?) 종수는 그릇에 사료를 놓아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해미의 집에서 보지 못한 고양이를 종수는 벤의 집에서 본다. 해미가 사라진 후 벤의 주위를 맴돌던 종수는 벤의 집에 초대를 받는다. 거기서 종수는 얼룩 고양이 한 마리를 본다. 벤은 누군가로부터 고양이를 받았다고 했다. 그 고양이는 해미의 고양이인가? 벤은 어느새 해미가 아니라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다는 벤은, 언제나 여유가 넘치며 부족함 없이 자란 도련님처럼 웃는다. 그에게 해미의 사라짐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에게 여자는 아무나, 어느 때나 대체가능한 인형 같다. 그는 그 인형을 가지고 놀뿐이다. 종수는 벤의 모든 것에 이질감을 느낀다. 그나저나 고양이는 해미의 고양이인가? 열린 문으로 뛰쳐나간 고양이를 찾으러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 종수는 자신이 잠시 돌봤지만 한 번도 본 적은 없던, 해미가 키우던(키운다고 말했던) 고양이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고양이는 얌전히 종수에게 와 안긴다. 이 고양이는 해미의 고양이인가? 벤이 종수에게 무슨 소설을 쓰느냐고 묻는다. 종수는 대답한다. 아직까지 무슨 소설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세상이 수수께끼 같다고. 수수께끼 같은 세상 속에서 종수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한 지점을 가키고 있지만, 거기 진실이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오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렸을 적 해미가 빠졌다던 우물은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른다. 벤이 데리고 있던 고양이는 해미의 고양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이 취미라던 벤의 말은 진실일 수도 있고 그저 허풍일 수도 있다.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벤의 말처럼, 종수는 지금 무언가에 너무 가까이 있어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무엇인가?

 

 

*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종수가 쓰려고 하는 소설의 장르가 드러난다. 아무 생각 없이 봤다가 둔기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전종서의 연기가 좀 튀는 것 같긴 해도, 아주 깊은 인상을 남긴다. 스티븐 연이 한국어를 그렇듯 유창하게 할 수 있을 줄 몰랐다. 유아인의 연기야 뭐. 중간에 대마초 피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묵직한 영화를 보았다. 배경 음악도 좋았다. 영화의 미스터리하고 모호한 분위기를 무척이나 잘 잡아낸 듯하다. 덕분에 모그라는 뮤지션을 알게 되었다. 특유의 모호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가 얼핏 떠오르기도 했는데, 《스토커》의 인디아(미아 와시코우스카)가 자신의 내면에 억압되어 있던 본능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캐릭터였다면, 《버닝》의 종수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그를 극단으로 내모는 양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디아는 시간이 갈수록 명징해지는 반면, 종수는 서서히 불명확한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물론 종수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하지만 진실이란 명확한 것인가?). 인디아에게는 진실이란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가진 내면의 충동, 오로지 그것만이 진실이므로. 종수는 진실을 찾은 걸까? 어쩌면 진실이란 안개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안개 그 자체라는 말일까? 우리는 끝내 알 수 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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