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독서를 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밀린 독서란 무엇일까? 밀린 빨래처럼, 독서도 밀려있는 것일까? 밀려 있다는 건, 언제까지 그것을 해야만 하는데 하지 못해 쌓여 있다는 말일 텐데, 그럼 나는 책을 언제까지 읽어야 한다는 말인가? 어떤 이유 때문에 책을 일정 기한 내 읽어야 한다면, 그래서 읽지 못한 책이 산적해 있다면, 그것은 밀린 독서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 그 책을 읽어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저 느긋하게 책을 읽다가 성미에 맞지 않으면 다른 책을 읽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하지만 또 내 방 책장에 꽂혀 있는, 읽지 않은 책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금 내 독서는 밀려있다고도(그것도 아주 많이!)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또 내 방에 존재하는 읽지 않은 책들이 아니라 내가 아직 사지 않은, 아직 내 책장에 꽂혀 있지 않은 무수한 책들을 생각한다면 과연 내 독서를 밀린 독서라 할 수 있을까? 그 책들까지 생각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밀린 독서만 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은가? 이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을 테니까. 읽고 싶은 책들만 읽는다고 해도, 우리에겐 계속해서 읽고 싶은 책들이 생길 것이므로. 그렇게 독서는 영영 밀려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우리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러므로, 이런 것이 아닐까. 밀린 독서라는 말은, 읽고 있는 책을 아직 덜 읽었다는 뜻이자, 그 책을 다 읽고 어서 다른 책으로 건너가고 싶다는 열망의 다른 표현이라고. 그러므로 우리의 독서는 늘 밀려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어떤 책을 언제까지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늦더라도 꾸준히, 조급해하지 말고 그저 읽어나가면 된다고. 밀린 독서에 대한 '생각' 말고, 이제 정말 밀린 '독서'를 하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