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문'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흔히 우리가 세계명작소설을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소설인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일까 생각하며 고전을 접할 때마다 항상 느끼게 되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이 책 또한 읽었습니다.
이 책의 주된 이야기는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남녀간의 애틋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학적인 사랑, 좀더 고차원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사랑이 그 시대의 사회상과 개개인의 잘못된 신념에 의해 어떻게 고통받고 변질되어 가는지에 주목합니다.
주인공인 제롬과 알리사는 외사촌간인데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19세기 유럽에서는 근친혼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자연스러운 행위였던가 봅니다. 이 책에도 보면 주인공들이 근친혼에 대한 어떠한 고뇌와 갈등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자신들의 사랑을 평범한 사랑이 아닌 좀 더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즉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하지만 믿음이 있다면 가야하는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가만히 두고 봅니다. 어떠한 요구도 기대도 하지 않은채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플라토닉한 사랑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랑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알리사는 자신의 믿음을 굽히지 않은채 제롬을 원하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지내다가 결국 죽고 맙니다.
그 후 제롬은 알리사의 죽음을 가슴속에 묻은채 영원히 그녀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들을 갈라 놓은 것은 무엇이며,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그래서 결국 그들은 좁은문을 지나간 것일까요?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강한 여운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랑에는 정신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한쪽 면 밖에 보지 못하는 것일테죠. 하느님도 우리들에게 그런 것만을 강요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그 당시 금욕적인 신앙 생활을 강요하던 시대의 갑갑한 상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고하니 누구보다도 그 불합리함을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고 또 그것이 이 소설을 쓰게 한 직접적인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지금 우리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은 사랑에 대한 그 어떠한 사회적, 종교적, 도덕적 억압도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자유스러워졌고 쉬워진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디지털 시대의 첨단을 걷고 있는 우리들의 사랑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이 책은 요즘 시대엔 고리타분하다도고 느껴질 수도 있는 책일 것입니다. 이 위대한 21세기에 금욕적 사랑을 그린 이야기라니!(물론 그러한 사랑을 알게 모르게 억압받던 시대상황의 불합리를 그리고 있는 것이지만...) 하지만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요즘 시대에 그러한 절실한 사랑이야 말로 우리가 진정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일깨워주는 보석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랑이란 결코 그리 쉬운것 만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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