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배수아 장편소설)

시월의숲 2005. 2. 13. 14:47
배수아의 비교적 최근작인 장편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장편의 이름을 하고 있지만 연작소설이라는 분류가 더 어울리는 소설입니다. 장편이라고 하면 의례, 등장인물이 많고,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얽혀있고, 하지만 주인공이 있어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뭐, 그런 속성들이 떠오르는데 이 소설은 그런 기대를 깡그리 무너뜨립니다. 작가는, 책 뒤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을 마치 단편처럼 써나갔고, 한편의 이야기가 끝나고 잊어버릴만 하면 다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식의 글쓰기를 했다고 하니 장편으로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전체적인 통일성을 가진 서사를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조금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소설일 것입니다.

일관성 없고 주인공도 없는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공통된 주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빈곤'에 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치명적 영혼의 상처, 궁핍... 작가는 지금껏 만나온 사람들 중에 빈곤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선언합니다. 즉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람이든,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든, 저마다 빈곤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이쯤되면 빈곤이란 어떤 세속적 잣대로 잴 수 없는 의미의,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결핍과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작가는 그것을 지극히 건조하고 냉소적인 문체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그 안에 음식의 냄새같이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묘한 분위기를 슬쩍 깔아놓습니다.(이것은 책에 실린 처음 몇편의 이야기에서 확실히 드러납니다) 즉, 빈곤의 가장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형태인 배고픔의 상태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오감에 대한 반응. 그것을 손에 잡힐듯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가장 모순적이고도 벗어날 수 없는 빈곤. 작가는 섣불리 가난에 대한 불합리를 질타한다거나 소위 가진 자들에 대해 비판하지도 않습니다. 그건 배수아 스타일이 아니지요. 그녀는 우리가 가진 마음 속의 가난에 대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빈곤에 대해 있는 그대로 그려보고 싶었음이 분명합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이 소설을 결코 끝낼수 없을것 같다고. 하지만 결국 책으로 나왔으니 심히 유감이라고.

소설을 읽고 본문에서 여러차례 언급되는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했습니다. 물론 픽션 속의 식당이니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고, 직접 가볼 수도 없겠지만 적어도 스키야키라는 음식만은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나를 포함해서)이라면 한번쯤 그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습니다.